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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thmb.tqn.com



이전에 보지 못한 신무기들



제1차 대전의 전쟁은 이전과 너무도 달랐다. 인류 전쟁사 5천 년 이래, 일찍이 보지 못 했던 무기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활약을 했고 전세에 많은 영향을 줬다.


땅과 하늘, 바다라는 한정된 전투 공간에서, 땅에는 탱크, 하늘에는 전투기와 제펠린이라는 거대 비행선.



*런던을 야간 폭격하는 독일의 제펠린 비행선. 유명한 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은 이 비행선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제펠린의 영국식 발음, 제플린. 출처: se5forum.org.uk



그리고 바다에선 물속으로 숨어 어뢰를 쏘는 해저 잠수함이 등장한다. 


물론 원시적 수준의 잠수함은 남북 전쟁 때도 나왔으나, 단 한 번의 전투에서 3척의 장갑 순양함을 돌아가며 격침시키는 엄청난 일 따윈 1차 대전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탱크가 영국의 결정적 무기였다면 잠수함은 U-보트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독무대였고 그들의 필살기 였다.



포로가 된 어떤 남자



그때 어떤 U-보트 함장이 있었다. 아직 서른이 안 된 28살 전후의 젊은 나이. 그는 자기의 잠수함 UB-68 호와 함께 출격한다.



*1차 대전 때 UB-68호의 원형인 UB-III형. 출처: wikimedia.org



그는 그리 많지 않은 출격에 이미 5척 격침 기록을 갖고 있었고, 이번에는 좀 더 큰 포획물을 찾기 위해 적이 장악한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나 초기의 잠수함들이 그렇듯, 기계 고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이때 영국 군함이 이를 발견, 맹포격을 해, UB-68는 침몰하고, 몇 명의 승무원이 전사하나, 젊은 캡틴은 나머지 승무원들과 함께 운 좋게 살아남는다. 그리고 포로수용소 행.



수용소에서



그는 좀 남달랐다. 한 마디로 U-보트에 미친 인간.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는 수용소에서 무료한 날들을 무료하게 보내지 않고, 잠수함 전에 대한 생각을 거듭한다.


U-보트라는 게, 당시 바다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과의 싸움에 결정적 무기가 된단 확신 때문. 수용소에서 연구한 대표적인 생각이 '늑대 떼 전법'.


나중 세상에 알려진 ‘울프 팩’이다.


그리고 이 구상을 넘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고, 해군 잠수함 부대로 들어간다면...”


다음이 무시무시했다. 


“그래서 내게 3백 척의 U-보트만 준다면, 나는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



*출처: s-nbcnews.com



잠수함의 은밀성과 치명적인 공격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이 얼마나 코너에 몰렸었나를 알았기 때문.


그가 바로 ‘칼 되니츠’였다.



*U-보트의 보스, 칼 되니츠. 출처: wikimedia.org



히틀러 집권 이후, 독일 해군 U-보트 총지휘관이 되고 나중 독일 해군 총사령관, 그리고 제 3제국 최후의 총통이 된 칼 데니츠.


히틀러는 그가 죽을 때, 자기 뒤를 되니츠에게 맡기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U-보트 3백 척



그런데 여기에서 3백 척 얘기를 해 보자.


3백 척 건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예산이 들어가고, 훈련된 승무원들이 필요하다. 또 그 척수가 갖춰져도 작전에 투입하는 건 아니다. 아니 투입할 수가 없다.


3백 척을 보유해야, 1백 척을 작전에 투입할 수 있으니까.


먼 바다로 나가 싸우고 이제 어뢰가 떨어져 돌아가는데, 그 바다 길은 험하고 멀다. 그리고 일단 돌아온 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어뢰와 식량, 물을 채워 나가는데 그것도 먼 길이다. 또 중간에는 적의 헌터 킬러들이 기다린다. 그래서 되니츠는 3백 척을 원했던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는 U-보트 1백 척. 지금 전투 해역에서 싸우는 1 백 척. 그리고 전투를 끝내고 돌아오는 도중의 1백 척.



*가자! 고향으로. 너무도.. 멀리 떠나 왔지만... 출처: historyplace.com



U-보트 총사령관이 된 되니츠



20년 뒤, 되니츠는 독일 U-보트의 총지휘관이 된다. 그리고 1969년부터 영국과의 싸움에 돌입한다.


과거 잠수함 UB-68이 영국 군함의 포격으로 침몰될 때는 그의 나이가 서른 안 짝이었으나, 지금은 나이 50. 지력(智力)에 있어서 인생 최 정점에 있을 때 직책을 맡은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보유한 U-보트 척수는?



맙소사! 독일 해군의 U-보트가 겨우!



65척이다.


3백 척은커녕 1백 척에서도 한참 모자라는 달랑 65척! 그런데 그게 다 전투에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시 전쟁이 한창이던 때, 바다에 있던 건 21척! 물론 나머지 항구에 있던 U-보트들도 어느 정도 뒤 따를 수 있었으나, 어쨌든 이 숫자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함대를 갖은 영국과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초기의 해저 전투에서 정말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1939년 10월.


그러니까 프랑스를 향해 전격전이 발동되기 7개월 전이다. 그때 벌써 한 척의 잠수함은, 스코틀랜드 쪽 항구로 스며들어 가 영국의 3만 톤 급 전함 로얄 요크를 격침시킨다.


38센티 거포 8문의 정규 전함.


*전함 로얄 요크. 출처: wikipedia.org



*아직은 전운이 감돌기 전, 전쟁 발발 2년 전의 당당한 로얄 요크. 출처: wikimedia.org



그것은 제1차 대전 ‘하르위치’로 향한, 비극적 항해에 대한 독일의 첫 번째 복수였다. 그 전쟁이 끝날 때, 살아남은 모든 U-보트들은 스스로 영국 남쪽의 항구 ‘하르위치’로 가야만 했다. 독일은 패했고 그렇게 하도록 조약을 맺었기 때문.


그리고 그 U-보트들은 스크랩 되어 고철로 팔리고, 어떤 건 영국 해군의 연구용이 되며, 또 어떤 건 기타 여러 연합국들이 전리품으로 갖고 가기도 했다. 이때 지구의 반을 돌아 가져간 이걸 갖고간 나라도 있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일본.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었다. 독일 해군으로선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단 한 척의 U-보트도 건조하지 못하고 보유하지도 못 했으니까.


이후, 독일 해군은 몰래몰래 스웨덴에 가서 어뢰를 같이 연구하기도 하고, 네덜란드로 가 잠수함 선체에 대해 연구를 하는 등, 애를 쓰긴 했으나 그들에게 암흑의 세월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다 히틀러의 집권과 베르사이유 조약 폐기로 U-보트를 건조하고 보유를 시작한다. 이때가 1935년이었으니, 딱 4년 뒤, 폴란드 국경을 넘어 독일 군이 진격을 개시할 때가 1939년!


수용소에서 되니츠가 생각한대로 전개 되기엔, 독일이 지나온 상황이 하늘과 땅 차이였던 것이다. U-보트 함 총지휘관이 됐고, 드디어 영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U-보트는 3백 척이 아니라 68척!


되니츠의 U-보트들은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영국의 상선대를 습격하고 대형 수상함들을 격침시켜 나간다. 그리고 전쟁 전반기 그 좋던 ‘U-보트의 황금시대’를 이룬다.


정말로 불굴의 전투 의욕과 전투 스킬을 가진, 독일 U-보트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약...



만약 3백 척이 있었다면?



포로수용소 철조망 안에서 꿈을 꿨던 제독의 바람.


“3백 척만 내게 준다면, 영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 


정말로 그런 척수가 있었다면?


분명 심대한 타격을 영국에게 줬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긴다고 할 순 없으나, 거의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잘 하면 정말 해가 지지않던 그 영국을 고립시키고, 이어 항복 비슷한 조약서에다 사인을 받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bluebird-electric.net



미국은 이때 고립주의의 고수로, 관망상태에 있어(일본이 진주만을 치기 훨씬 전이다), 전쟁에는 전혀 개입할 생각도 안 했고, 따라서 그 넓은 지구 상에서 오직 영국 혼자만이 싸우고 있었을 때이니까.


처칠 수상은 그의 저서 ‘제2차 대전사’에다, 이렇게 쓰기도 했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대포를 끌어와 싸워야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워낙에 전쟁 초기라, 영국 해군의 헌터 킬러 기술 레벨이 아직 낮았다는 거. 그래서 3백 척의 U-보트였다면 대영제국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하고, 그 봉쇄를 풀려는 수상함정들과 맞서며, 항복 내지는 그 비슷한 언저리 협정이라도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왜냐면 무역로가 절단되면, 전쟁 물자도 전쟁 물자이나 우선 식량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은 U-보트가 설치고 다닐 때, 식량이 진짜 몇 달치 밖에 안 남았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독일은 패배한다.



결국 멸망한 쪽은 영국이 아니라 독일이었다.


전쟁이 적성에 딱 맞고 전쟁을 하는 데 있어서 최적화되어 있는 민족 게르만, 거기에 기술과 공업력에 있어 톱 클래스의 나라. 그래서 무기의 질에 있어서도 톱 클래스. 또 전투에 있어서 중핵을 이루는 집단이 누군가? 독일 장교단이다.


프로이센 이래 ‘헌신과 명예와 충성’이 그들의 본명이며 그들의 전통이었다. 당연히 이들의 작전 능력은 매우 우수했다.


어느 2차 대전사 히스토리안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미국이 내놓을만한 지휘관은 패튼인데, 그의 작전 능력은 롬멜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


그런데 롬멜보다 뛰어난 지휘관들이 독일에 있었다. 대 병력으로 인한 전투가,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던 동부전선에서다.


특히 만슈타인.


롬멜의 별명은 사막의 여우이지, 사막의 마술사라는 별명은 붙지 않는다. 그러나 만슈타인은 아예 이름 뒤에 매직이 붙어, 만슈타인 매직이라 하지 않던가?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 필자 개인적으론 제2차 대전 모든 지휘관 중 단연 그가 톱이라 생각한다. 출처:wikimedia.org



스탈린그라드에서 완전 승리를 거둔 소련군이 그 여세를 몰아, 노도와 같이 쳐들어오던 제3차 하르코프 전투. 그때 만슈타인은 귀신같은 작전으로 소련군 기갑부대를 통타, 9만 명을 전사케 하거나 부상을 입힌다.


그때 병참선이 끈긴 소련군이 바라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설해(雪解).


“빨리 날씨가 따듯해져, 눈아 녹아라.”


그래야 질퍽해진 길로, 독일 탱크의 전진이 어려워지니까. 그런데 무정하게도 그 해는 눈이 쉽게 녹지 않았다. 겨우 녹기 시작했을 때, 그때는 진격했던 소련군이 거의 궤멸된 뒤.


이 전투에서의 소련군 병력은 35만. 반면 독일은 7만 명. 그러니까 35만 대 7만의 싸움, 독일과 소련의 사상자 비율은 1대 9. 그리고 소련은 무수한 기갑장비를 잃는다.


전세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바로 얼마 전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을 통째로 전멸시킨 뒤라, 기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게 소련군이었다. 또 이때쯤의 그들은 초기의 혼란 속에 무조건 깨지기만 하던 군대가 아니었고.


“이제 자신 있어! 해보니까 별 거 아니야.”


그런데도 소련군은 된 통 당해, 얼마 전 스탈린그라드에서 벌어 높은 걸 다 까먹는다.



클래스는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더구나 이 3차 하르코프 전투는 특별한 게 또 있었다. 1943년 3월 경, 겨울에 벌어진 전투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알다시피 소련에서의 겨울은 동장군 시절, 그들은 겨울에 강했고 진 적이 없었다. 반대로 독일군은 겨울에 약했고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소련으로 쳐 들어갔던 첫 해, 모스크바 공략전이 실패한 것도 때 이른 겨울을 만난 것이고, 두 번째 해의 스탈린그라드 시가전도 겨울에 벌어진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독일은 겨울의 싸움에서 이기고, 소련군을 대파. 기세가 한껏 오른 소련군을 다시 한번 눌러버린 것이다.



*하르코프 시가전, 소련은 35만, 독일은 7만의 병력으로 요격해 전멸시킨다. 사진 속 AFV는 가운데가 이런 시가지 전투에 유용한 3호 돌격포, 그리고 왼쪽은 바퀴와 캐터필러를 같이 쓰는 하프 트럭이다. 출처: wikimedia.org



스탈린그라드에서 30만 명이 포위당해, 완전 궤멸된 독일군 초유의 카타스트로피 적 상황. 그래서 망조가 들었던 상황에서 다시금 전열을 추스려 큰 승리를 거둔 독일 군.


그들은 소련군한테 이런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늬들 까불지 마라. 클래스는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그야말로 저력의 독일군. 그리고 제2차 대전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독일군의 클래스는 항상 유지된다. 연합군에 밀리고 밀려 자기네 원래 영토였던 독일 땅으로 후퇴하는데도, 혼란이나 붕괴가 없었다.


끝까지 그 클래스를 유지했다.


그런데 결국은 패배한다. 전투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게르만의 나라 독일군은 패배한다.


왜? 어째서? 


(1회 끝)




김은기의 커피 테이블 토크


*제공: snaparker



우리나라엔 책이나, 인터넷 등 여러 분야에서 독일 군 자료가 풍부하다. 또 프라모델에서도 독일 군 아이템이 단연 톱이다. 그것은 독일 군 쪽이 가장 인기 있다는 반증.


그런데 그런 휘날리는 전력(戰歷)과 함께 가장 멋지다고 생각되는(?) 독일 군이 결국은 왜 패배의 길로 들어섰고, 그들의 제 3제국은 동정의 여지조차 없이 멸망한다.


얼마 전 필자는 필자의 블로그 ‘전쟁과 평화’를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아, 내가 다른 걸 하느라, 소홀히 한 게 있네.’ 하는 게 있었다. 그게 바로 ‘우리 모두 전략가가 됩시다’의 ‘우모전’ 시리즈.


시리즈도 되살릴 겸, 이 글을 시작한 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왜 패했을까?’


고급스러운 지식의 잔치를 지향한다는 ‘우모전’답게,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 2천 수백 년 전 무적이었던 로마 군단의 호적수로 존재했었고, 어떤 땐 그들의 용병으로 있었으며, 그러다 결국 로마의 ‘최종 멸망자’로서 존재했던 흥미로운 족속 게르만.


그래서 다음 회에는 그들 피 속에 흐르는 DNA를 잠깐 살펴본 뒤, 이후, 유럽 대륙의 강자로 자리매김하다 20세기 들어서 전 세계를 상대로 치른 두 차례의 대 전쟁과 패배. 특히 제2차 대전에서의 패배 원인을 알아보려 한다.


그들은 어떤 특성을 가졌기에 전 세계를 적으로 한 전쟁에서 눈부신 성공을 했고, 그러다 어떤 결점 때문에 패배의 길을 더듬어 갈 수밖에 없었나?


바로 그런 나라, 독일의 맨 파워와 기술력, 공업력 등의 펀다멘탈과, 그 가운데에 어떤 것이 결여됐고, 착각을 했으며, 전혀 할 필요가 없었던 실수를 했나?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따라서 다음 편부터는 전문적(?)이면서 아카데믹하고, 또 2차 대전 때의 그랜드 스트레티직(대 작전) 같은 것도 다루려 한다.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게, 누구도 쉽게 이해하게끔, 또 읽는 동안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쓸 작정이다.


이번 글에서 ‘칼 되니츠’ 제독과 3백 척의 U-보트로 스타트를 끊은 것처럼.



*출처: diodon34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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