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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하고, 그 비극적인 독일 공수부대의 크레타 강하. 출처: wikimedia.org



강하 엽병은 독일 공수부대가 아니다 



밀리터리 계통에 잘 못 알려진 게 하나 있다.


제2차 대전 때의 독일 공수부대에 대해서다. 그 부대라고 하면 강하 엽병을 떠 올린다. 독일 공수부대와 강하 엽병은 등식이라는 것. 그런데 그게 결코 맞는 건 아니다.



*크레타 전투 시, 독일 팔쉬림 야거의 강하. 출처: pinimg.com



강하 엽병은 일본 식 한문 명칭인데, 독일어의 팔쉬림 야거를 한문으로 그냥 번역했다고 할까? 팔쉬림(Fallschrim)은 독일어로 하늘에서 내려올 때 쓰는 낙하산, 야거(Jager)는 사냥꾼인데, 한문으로 하면 엽병(獵兵), 그래서 팔쉬림 야거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냥꾼들, 강하 엽병이 된다.


물론 우리로선 썩 내키는 이름은 아니나 그래도 많이 익숙해져, 일본식 조어라는 것만 알면, 그냥 써도 될 듯하다.


그런데 강하 엽병 얘기가 아니다. ‘잘 못 알려진 게 하나 있다.’라는 건, 강하 엽병이 곧바로 독일 공수부대는 아니라는 거다. 그 부대엔 강하 엽병 포함 3가지 부대가 있으니까. 그중의 하나가 강하 엽병일 뿐.


다시 말해, 궤링 휘하 독일 공군의 공수 부대는(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독일의 공수 부대는 공군 소속이다) 각각 다른 방법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싸우는 부대가 3개나 있고, 그게 합쳐져야 독일 공수부대가 된다.



강하 엽병은 여러 병과 중 하나다



그렇다. 강하 엽병은 공수 부대 3가지 병과 중 하나일 뿐이다. 현대의 전쟁터에 헬기 강습 부대가 낙하산 강하 부대와 다르듯, 2차 대전에도 낙하산 강하 부대와 다른 글라이더 강습부대가 있었다.


그리고 제3의 공수 부대가 있다. 아니 또 무슨 부대?


필자가 알기에 이건 독일 공수부대만의 특별한 병종(兵種)인데, 낙하산으로 강하하지도. 글라이더를 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병력 수는 가장 많고, 또 무장도 탄탄하다. 중무장 부대.


‘수송기 강습부대’다.


수송기를 타고 적 비행장에 그대로 기습 착륙! 기체에서 뛰쳐나와,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비행장을 장악하는 부대다. 물론 처음부터 활주로를 강습하지 않는다. 제 2파(波)나 3파 강습부대라 할까? 강하 엽병이나 글라이더 강하 병들이 먼저 전투를 개시 한 다음, 어느 정도 활주로의 방어 병력들을 제압됐을 때 수십 대의 수송기가 날아와 강행 착륙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 부대가 어찌 보면 주력일 수도 있다. 수송기들이 옮길 수 있는 한도 내의 중무기들을 가져오니까.


독일 공수 부대에 의한 당시 사상 최대의 강하 작전 크레타 공략! 당연히 이 3가지 부대가 모두 참여했다. 그리고 이 수송기 강습 부대가 나중, 승리에의 길을 연다. 의외의 얘기가 아닌가? 강하 엽병도 아니고 글라이더 돌격부대도 아닌 3번째 수송기 강습 부대가? 그렇다면 이 3가지 부대들을 한 번 간단히 살펴보자. 훈련도 다르고 전투 방법도 다른 부대. 당연히 부대 명칭도 다르니까.



첫째, 강하 엽병 ‘팔쉬림 야거



낙하산을 등에 메고 비행기에서 점프하는, 우리가 익히 아는 부대,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냥꾼들이다. 그래서 다른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크레타 1941년 5월. 출처: maquetland.com



두 번째 ‘공수 돌격 연대’



대형 글라이더를 타고, 적지에 강행 착륙하는 부대다.


2차 대전 때는 공수 강하 부대 중 상당한 몫을 차지했는데, 그래서 미국과 영국의 커다란 강하 작전에 글라이더는 빠지지 않는다. 당연히 마켓 가든 작전에서도 다수가 적지에 강행 착륙했으나 너무 위험하고 낙하 방법의 발달로 제2차 대전 후 사라진 부대.



*영국의 ‘홀사’ 강습 글라이더. 그 안에는 지금 25명의 붉은 악마(영국 공수 부대)가 완전무장한 체 타고 있다. 앞에서 공중 예인 중인 건 할리팩스 4발 폭격기 출처: flightsim.com



*마켓 가든 작전 시 비운의 붉은 악마들이 타고 온 홀사 글라이더가 네덜란드의 어느 밭에 착륙해 있다. 다행히 서로 충돌하진 않았다. 출처: wikipedia.org



그리고 이 부대를 독일에서는 스투룸 레기멘트(Strum Regiment), 일명‘공수 폭풍 부대’ 또는 ‘공수 돌격 연대’라 불렀다. 폭풍이라는 의미의 스투룸을 독일에선 과감한 돌격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크레타 작전 때 사용한 ‘공수 돌격 연대’의 DFS-230 강습 글라이더. 자체 엔진 없이 활공을 하기도 하는데, 보통은 수송기가 앞에서 굵은 로프로 연결, 선도 비행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blogspot.com



세 번째, 수송기 강습 부대



독일 공수부대만이 보유한 부대다. 그리고 작전에 따라 주력이 될 수도 있다. 수십 대의 융커스 Ju-51 수송기에 태워 적 비행장에 내리게 하면, 연대 병력, 또는 사단 병력도 적국 영토의 한가운데서 작전을 펼칠 수 있으니까.


당연히 이들은 등에 낙하산을 멜 필요도 없고, 장비에 제한도 받지 않는 진짜 제대로 된 전투병이다. 수송기에 중 장비에다 이동 차량과 경 탱크도 같이 싣고 가니까. 그렇다고 이들의 활주로 착륙, 쉽지만은 않다. 이미 활주로에는 아군 수송기와 글라이더가 여기저기 불에 타 부서져 난리 법석이고, 한참 전투 중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제 그럼 독일의 대규모 공수작전 과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것이다. 낙하산을 멘 팔쉬림 야거가 먼저 점프! 중요한 지점을 기습 점령하고, 강하 폭풍 연대는 대형 글라이더로 적의 비행장 활주로에 강행 착륙. 활주로 주변의 적 화력 진지로 돌격해 제압한다.



*슈투룸 레기멘트, 글라이더 강하 폭풍 연대. 출처: defensemedianetwork.com



이제 다음 공격! 수송기들이 떼거리로 날아와, 활주로에 착륙한다. 수송기 안에는 대량의 강습 부대원들과 함께, 탄약, 식량 등의 보급품이 실려 있고, 또 어떤 기체엔 기동 차량이나 심지어 경 탱크까지 실려 있다. 적국의 한가운데에 강력한 교두보가 설치되는 순간이다. 그 뒤 계속해서 활주로로 지원 병력이나 보급품이 들어오고. 교두보는 점점 확대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하늘로부터의 수송 능력이다. 다시 말해 수송기 세력. 독일 공군은 이런식의 수송 작전에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스페인 내전 때의 성공으로 증명이 됐고, 당시로서 또 유럽 어느 나라보다 능력 있고 안전한 엔진 3개의 3발 수송기 Ju-52를 수백 대 보유. 단번에 대량의 병력과 물자들을 다른 지점으로 공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크레타 섬 공략시 동원된 독일의 융커스 수송기는 모두 5백대! 이때가 제2차 대전 초기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공수 수송력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자신감은 독일에게 있어 대 재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궤링은 자신이 있었고 히틀러는 그런 공군의 공수 능력을 믿었는데, 이게 탈이 난 것은 스탈린그라드 포위전 때다. 궤링은 큰 소리 땅땅 쳤다. ‘문제 없습니다. 우리 수송기 부대는 그 속에 있는 제 6군에 필요한 보급품, 충분히 공수할 거니까’ 이후 제 6군은 궤멸돼 버렸다.)


그러나 크레타 작전은 그보다 2년 앞선 일. 



크레타를 점령하라!



이제 서 유럽 전토를 점령하고 발칸 반도마저 석권한 독일. 다시 또 그 반도의 끝, 그리스에 있는 영국군까지 쫓아낸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승승장구! 유럽은 나치 독일의 영토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로부터 바다 건너 지중해 한쪽 긴 섬이 있었다.


동서 길이 250킬로나 되는 긴 섬. 크레타 섬.



*크레타와 지중해. 타원형 안에 있는 게 크레타다. 그 위가 그리스. 터키가 근처에 있다. 출처: we-love-crete.com



거기엔 그리스에서 패배, 도망간 연합군이 있었다. 4만 명이 넘는 병력. 그런데 그 병력은 신경 쓸 게 없으나 문제는 그 섬의 비행장이었다. 비행장으로 영국의 폭격기들이 들어와 루마니아로 출격하면? 루마니아에는 유럽 유일의(소련 빼고) 유전지대인 ‘플로에스티’가 있잖은가? 


“유전이 폭격받으면 어떻게 해? 안 되지.”


독일의 수많은 야전 지휘관들은 전쟁 자체를 생각했으나, 히틀러는 전쟁 경제를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데 보다 크레타 섬 비행장에 신경을 썼는데, 때 맞춰 공수 부대 지휘관들이 궤링과 함께 작전 계획서를 만들어 온다.


“대규모 공수 작전으로 크레타를 점령하는 겁니다.”


히틀러는 매우 흥미 있어 하나, 전쟁 역사상 한 번도 없던 일. 1년 전 노르웨이와 벨기에 운하의 요새를 점령할 때 공수 작전이 실행 됐지만, 그것은 기습이었고 소수가 동원된 일종의 특공작전이었다. 그런데 이 번엔 적군이 우글거리는 커다란 섬을?


“아니, 거기엔 4만 3천이나 되는 적군이 있다며?”


그리스로부터 겨우 겨우 도망 나왔지만, 영국과 호주군, 뉴질랜드 군이 2만 8천에다 역시 망명 그리스 군이 1만 4천이 있는 섬. 거기를 하늘로부터 공격해 점령하려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껏 어떤 나라, 어떤 군대도 해 보지 않은 일.


그러나 궤링과 함께 공수 부대 지휘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공수 작전 능력은 세계 최강입니다. 수송기 500대를 한꺼번에 동원하니까요. 그래서 강하 엽병부대, 글라이더 폭풍 연대, 또 활주로 강습 부대를 태워 크레타 섬에다 점프 시키면, 일종의 패잔병이나 마찬가지인 연합군을 몰아붙여 충분히 점령할 겁니다. 물론 그전에 우리 폭격기와 급강하 스투카가 두들기고요.”


히틀러는 결심한다. 역사상 최초의 대 공수 작전을 실시하기로.


작전명은 메르큐르! 영어로는 머큐리다.



하늘을 뒤덮는 580대의 수송기와 강습 글라이더! 



*융커스 수송기, 설계는 1차 대전 말인데, 제2차 대전 중기에도, 그 만한 수송기는 드물었다. 출처: aviarmor.net



1941년 5월 20일.


프랑스가 항복하고 난 뒤 다음 해, 그리고 롬멜이 아프리카로 들어간 게 바로 몇달 전, 또 발칸 반도를 석권하고 그리스에서 영국군을 바다로 쫓아낸 뒤의 제 3 제국. 그야말로 승리만을 쟁취했던 무적의 나치 독일 군.


이번엔 크레타 섬을 향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 항공 함대를 발동시킨다(독일 공군엔 항공 함대라는 편제가 있다).


융커스 Ju-52 수송기 500대 그리고 DFS 강습 글라이더 80대와 이를 호위하는 쌍발 전투기들이 그리스 각처의 비행장에서 떠오른다. 수송기와 글라이더 안에는 제 7 공수 사단과 제 5 산악 사단 병사들.


산악 사단이 여기에 합류한 것은 원래 제 22 공수 사단이 문제의 그 루마니아 플로에스티 유전 경비로 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악 사단 또한 공수 사단과 거의 동등한 전투력. 그리고 글라이더를 타고 적 비행장에 돌입하는 ‘공수 폭풍 부대’이니 큰 차이는 없다. 거기에다 당장 1파로 참가는 하지 않았으나, 예비 부대로서 제 3 산악사단을 그리스 본토에 대기시킨다( 바로 이 산악 사단이 나중에 들어와, 크레타의 판을 뒤엎는다).


목표는 바다 건너 지중해의 섬 크레타! 그곳엔 독일 폭격기들의 폭탄 속에서 4만 2천 명의 연합군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공수 부대를 기다리는 중.


그런데 이 공수 작전의 규모가 얼마나 큰가 하면, 각 그룹의 지휘자들 계급으로도 봐도 알 수 있다. 모두 3 그룹으로 나눠 낙하 공격하는데, 하나는 섬의 서쪽 그룹, 하나는 중앙 그룹, 그리고 동쪽 그룹. 이렇게 3개 그룹 지휘관들은 모두 소장 계급으로 3명. 그들은 고위장성인데도 직접 강하에 참가한다.



*각각 3그룹으로 나뉜 공수 공격대. 출처: pinimg.com



크레타 강하!



지중해를 날아온 공중 수송 함대. 크레타 섬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섬엔 이미 스투카의 폭격을 받아 연기가 여기저기서 올라오는데, 드디어 크레타 상공으로 돌입이다. 사상 최대의 강하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무려 1만 4천 명의 낙하산 병사들과 글라이더 돌격병들의 강하! 그리고 뒤를 이어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장 강습 산악부대!



*출처: blogspot.com




*벌써 융커스 1대가 떨어지고 있다. 지상과의 격돌은 1분 아니면 수초! 그런데 필사적으로 몇 명의 야거들은 점프. 출처: wikimedia.org


그러나 이들 엘리트 병사들은 곧바로 매우 가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이 섬은 그들에게 있어 지옥이고, 그들의 최종 사령관조차 이런 얘길 했으니까.


“독일 공수 부대의 공동묘지다.”


(이 글에서 낙하산 부대를 팔쉬름 야거라고 썼습니다. 야거. 원래는 예거라는 발음이라는데, A자 위에 우무라이트를 붙일 수 없고, 또 그냥 야거라고도 발음하는 거 같네요. 독일에선 전투를 ‘약트’라 하고, 축구의 골 사냥꾼을 토오 야거라고 하니까.) 




('크레타 대 공수 작전 II ::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 7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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