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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포 포탄이 터지는 하늘.

벌써 어떤 융커스는 불이 붙었다. 팔쉬림 야거들이 뛰어내린다.


"점프!"


부대명 그대로 하늘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병사들




*거칠게 착륙한 강습 글라이더로부터도 슈투룸 레기멘트, 강하 돌격 부대원이 튀어나온다. 출처: hotel-mike.com



그런데 이들을 기다리는 건 몹시도 엄한 상황. 어느 정도 패잔병이라 하나, 그래도 4만 명이 넘는 연합군들. 그 총구가 요소요소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목은 융커스 수송기의 추락. 출처: alamy.com



고전과 고전, 출혈에 출혈이 시작된다. 예상은 했으나 너무 지나치다. 정말이지 이런 경험은 처음! 그나마 멀쩡한 부대가 있다면 그건 연합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에 착지한 경우다.



출혈, 또 출혈!



1941년 봄이라면, 독일 병사들 사기와 전투력은 최고였다. 영국군도 질기게 싸우는 측면이 있지만, 독일 병사한테는 당할 수 없었다. 더구나 강하 독일 병들은 완전 엘리트! 반면 수비를 하는 쪽은 그리스에서 중장비를 버리고 겨우 탈출한 그리스 군과 영연방 병사들 아닌가? 그리고 영국군 중 5천 명은 이전부터 크레타에 있었던 병력. 그러니 어떻게 상대가 되나?


그런데 이것은 각개 병사와 각개 병사의 싸움도 아니고, 하나의 부대 편제와 편제의 싸움도 아니다. 한 쪽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글라이더에서 나오고, 한 쪽은 진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래서 독일군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도중, 공중 목표물이 되거나, 착지할 때 총알을 맞는다. 물론 무사히 내려와 낙하산을 분리한다고 해도 반격할만한 총이 없다. 소총이나 기관단총, 경기관총은 콘테이너 박스에 따로 들어가 있어, 어디에 떨어져 굴러다니는지 모르는 상태(2차 대전 초기의 공수 작전 아닌가?).


따라서 진지 속에서 웅크리고, 한 발, 한 발 조준 사격을 해 대는 연합군한테 당분간은 권총으로 대항해야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단거리 무기는 전투에 별 영양 없는 상태. 여기엔 이유가 있다. 등에는 두툼한 낙하산, 앞가슴엔 낙하산과 연결되는 거추장스런 하니스와 벨트가 몸을 죄고 있다, 또 착지 직후엔 골절이나 심한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무릎을 재빨리 굽혀, 앞 쪽으로 한 굴러야 했다.


이러니 어떻게 무거운 소총이나 기관단총 등을 메고 점프할까? 이런 이유로 소총과 공용화기인 경기관총은 콘테이너 박스에 따로 집어넣어, 점프할 때 낙하산을 달아 따로 던진다. 그런데 이게 훈련 시라면 착지를 해 금방 찾을 수 있으나, 지금 총알이 핑핑 날아오고 여기저기 죽어가는 완전 살벌한 전쟁터! 어떻게 콘테이너 박스를 찾으러 다닐까? 더군다나 같이 모여야, 조직적인 전투를 하든가 말든가 하는데,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다. 또 지휘관들은 어디 있고?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인데, 운 좋게 연합군 없는 곳에 떨어진 팔쉬림 야거들이다. 출처: steemit-production



말메 비행장 혈투!



그래서 3일 동안 거의 작전이 실패하지 않나 싶을 정도의 대 타격을 입는데, 특히 작전 성공의 키가 되는 ‘말메(Maleme)’ 비행장 점령에 애를 먹는다. 비행장을 점령하고, 주위를 청소해야, 3번째 공수 부대인 ‘활주로 강습부대’를 태운 융커스 수송기가 날아와 착륙하는데, 근처 언덕의 뉴질랜드 부대가 끈질기게 저항하며 버티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비행장 담당 독일군으로선 환장할 일.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는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행운이 찾아온다. 뉴질랜드 부대에게 잘 못 전해진 명령.


"고지를 버리고 후퇴하라!"


용감했던 뉴질랜드 군이 철수해 버린 것이다(이것은 크레타 전투, 가장 잘못된 명령이라 한다).



제 3 산악사단 출동!



이제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스에서 지휘를 하던 최종 지휘관 스투덴트 중장, 활주로 강습 부대를 태운 수송기들을 대거 출격시킨다. 이 기체 속에 있는 건 제 3 산악 사단. 물론 이들도 강인한 파이터다. 그리스 해안가를 공중에서 지나 바다를 건넌다, 그리고 엉망이 된 활주로에 강습 착륙!



*브론코 사의 독일 강습 글라이더의 박스 아트다. 제 3 산악사단은 이런 비행장에 내렸을 것이다. 출처: blogspot.com



뒤이어 계속되는 독일 공군 폭격기들의 지원, 제공권은 독일이 가졌기 때문이다. 또 이제는 바다로 부터도 수송선이 들어온다. 병력과 함께 탱크 등의 중장비를 탑재한 수송선이다.


아니 바다로부터? 영국 해군이 있는데?


그리스 반도와 섬의 북쪽은 영국 군함이 들어올 수 없었다. 독일 공군의 제공권 하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연합군에겐 보급도 없으며, 병력 지원도 없다. 영국 군함이 섬으로 접근, 지원하려고 하면 하늘에서 스투카가 그냥 내리꽂기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드디어 영국군은 탈출을 결심한다. 크레타 북쪽과 남쪽 항구로 후퇴, 배를 타야 한다. 필사의 탈출이다. 섬의 남쪽 항구 스파키아로 부터 2만 명. 크레타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항구인 헤라클리온에서 1만 명, 거의 뭐 덩케르크 비슷한 탈출이다(이때의 탈출에 대해 쓴 ‘스파키아로 가는 길’이라는 책도 있다).



*아마 스파키아 항의 탈출 유화인 듯하다. 지금 스투카가 강하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2만 명이 탈출한다. 출처: pinimg.com



그래도 수비군 4만 수 천 명 중에서, 3만 명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온다. 물론 탈출에 실패해 뒤쪽에 남아 있거나, 본대의 탈출을 돕기 위해 최후의 저지선이 됐던 병사들은 포로가 되고.



*탈출 대열에서 낙오했나? 배를 타지 못한 영연방 병사들이 포로로 잡히고 있다. 출처: pinimg.com



독일로서는 작전 개시 이래 10일. 이제 크레타 점령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몹시도 힘든 전투,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였다. 살아남은 독일 병들은. 그 10일 동안의 전투가 얼마나 가혹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부대원들이 다시 모였을 때 전율을 금치 못 한다. 그리스 비행장을 떠날 때의 전우들은, 4명에 1명 꼴은 전사했고 또 다른 전우들은 부상으로, 전선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아! 독일 공수부대의 공동묘지



YOUTUBE 크레타 섬 전투 영상을 보면 독일 병사들 몇 명이 서서(단지 몇 명), 풀밭에 서서 기도인지 묵념을 하는 영상이 나온다. 그런데 원래는 소대였단다. 그들만 빼고 나머지는 전사 내지 부상으로 후송됐다는 얘기. 단지 몇 명만 빼고.




*팔쉬림 야거는 아닌 것 같다. 헬멧으로 봐, 글라이더 강습 산악 사단 인듯.. 출처: harveyblackauthor.com



피해 상황에 대한 또 다른 증명으로 고위 지휘관 사상률도 있다. 그리스 본토에서 3개의 공수 그룹으로 나눠 출동했는데, 각각의 그룹 지휘관은 소장 계급. 상당히 높다. 그러나 이들 중 몸이 성한 경우는 단 1명.


서부 강하 그룹의 재즈만 소장은 전사. 중앙 강하 그룹의 마인들 소장은 중상으로 이탈! 그리고 이 그룹의 글라이더 부대 돌격 단장 알트만 대위는 포로가 됐으니까. 겨우겨우 성공했으나 실패한 작전!


이 작전에 참가했던 ‘폰 데아 하이테’ 중령은 심대한 출혈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첫 번째 원인은 공수 부대 초급 장교들의 경험 부족이다. 이런 전투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분석은 이어진다.


"물론 그 젊은 장교들은 용기와 열정, 애국심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경험 부족을 매울 수 없었다."


이것은 필자가 볼 때, 젊은 장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독일 공수부대 상층부와 최종 사령관 게링. 또 히틀러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공수 사단 2개가 참가하는 이런 경우는 세계 전사 상 처음 아닌가(나중 1개 사단이 또 플러스돼 3개 사단이 된다)? 이런 작전이 2차 대전 초기에 행해졌다는 건, 정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 적군의 숫자가 더 많고, 그 병력이 지금 하늘을 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에다 그 병력을 투하시켰다. 이전엔 해 보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공수 작전을.


그러니 폰 데아 하이테 중령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


"젊은 장교들의 애국심과 헌신으로는 경험 부족을 매울 수 없었다."


그래서 독일의 전쟁 상층부는 이런 때늦은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미리 한 번 대대 또는 연대 규모의 공수 작전을 해봤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한꺼번에 2개 사단 플러스 1개 사단을 투하했으니..


이 작전의 최종 지휘관이었던 스튜덴트 중장은 그래서 나중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너무도 회한 어린 심정으로..


"크레타는 독일 공수 부대의 공동묘지였다."


크레타 강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은 얘기다. 그리고 그 말은 크레타 작전의 상징이 돼 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살아남은 야거들이 전우의 묘지를 바라본다. 나무 십자가 위에 철모는 분명 팔슈림 야거의 것. 국방군이나 무장 친위대 SS와 구별되는 게 그들 철모니까. 출처: blogspot.com



*팔슈림 야거 병사, 철모도 계급장도 다르다. 계급장은 거의 갈매기 모양? 출처: pinimg.com



히틀러의 커다란 오판(誤判)



그런데 크레타가 독일 엘리트 병사들 묘지가 된 데는, 히틀러의 전략적 오판과도 연결된다. 쓸 데 없는 데다 병력을 썼다는 것. 작전 실시의 단 하나 이유가 크레타 비행장이었다. 영국 폭격기가 그 비행장으로부터 날아오를까 봐. 전쟁이 끝난 후, 영국 수상 처칠은 제 2차 대전 회고록에(그 해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전투에 대해 이렇게 쓴다.


"만약 히틀러가 그 부대를 크레타가 아니고, 그리 멀리 않은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등에 기습 낙하 시켰다면? 그건 정말 아찔하다."


중근동엔 제대로 된 영국군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전투력에 있어서 상대가 될 수 없었다(원래 세상에서 제일 약한 게 식민지 주둔 군대다. 싱가폴 영국군도 일본군한테 속수무책 당하지 않았던가?).


또 팔레스타인에서 조금 내려가면 영국의 숨통이나 마찬가지인 수에즈 운하가 있다. 그때는 일본이 진주만을 치기 전이라, 미국은 이 전쟁과 별 관계가 없고 영국만이 죽어라 전쟁을 할 때다. 그런데 히틀러는 중근동이 아니라, 최정예 병력 수만 명을 지중해의 변두리라 할 수 있는 데다 몰아 투입했던 것.


그것은 또 처칠에게 있어 또 다른 이익을 안겨주는 결과로 작용하는데, 지중해에서 진짜 중요한 전략 요충지, 몰타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크레타는 지중해 동쪽에 있다. 그러나 몰타는 한가운데 있다. 영국으로부터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이집트까지 가는 바닷길의 가운데. 시쳇말로 지중해의 ‘알 박기’ 섬이다.



*지중해와 몰타, 이태리 반도 바로 아래에 고조, 몰타 두 섬이 있다. 고조 섬도 몰타의 일부다. 그리고 크레타는 동쪽으로 떨어져 있다. 출처: arthistoryworlds.org



그런데 이 섬이 크레타 때문에 살아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히틀러가 뒤늦게 몰타를 공략하려 해도, 두 가지 부분에서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공수 작전에 대한 크나큰 회의와 낙심.

또 하나는 공수 병력의 부족.



보병이 된 낙하산 사냥꾼들



처칠의 저서 ‘제 2 세계 대전 회고록’을 다시 보면 이런 게 나온다.


"히틀러는 예상치도 않았던 피해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크레타 이후엔 일체의 대규모 공수 작전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럼 공수 작전이 없어졌는데, 강하 엽병들과 강하 폭풍 부대는 어디에 쓰나?


처칠이 직접 쓴 글이다.


"동부 전선에서 그냥 보병으로 소모시켰다."



*눈 쌓인 러시아. 전투력이 보병보다 앞설 수 있겠으나, 결코 홈그라운드는 아니었다. 출처: wikimedia.org 





<크레타 대 공수 작전 II -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7부 끝, 8부에서 계속>





김은기의 커피 테이블 토크


*@wenaon 제공



필자가 군에서 낙하산 타워 훈련을 받을 때다. 요새는 아마 다 이런 훈련받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기억이 나는 건 모래밭에서의 착지 훈련이다. 착지하자마자 옆으로 쓰러지는 훈련. 이걸 상당히 많이 받았다. 발목이 위험하기에 그 충격을 온몸으로 분산시키려는 이유.


그나마 그런 걸 좀 했다고, 크레타 작전 다큐멘터리 영상을 볼 때 필자는 괜히 마음 쓰이는 부분이 생긴다(비록 그들이 나치의 중핵이라 해도).


팔쉬림 야거의 착지 순간이다.


"저거 저러다, 발목뼈 안 부러져?"


착지 동작이 너무 거칠기 때문. 권총에다 대검, 수류탄만 소지했다고 하나, 신체적으로 체격이 크고, 등에 맨 배낭도 있고, 또 당시의 낙하산은 지금과 달리 강하 속도도 빠르게 돼 있을 게 분명하다(엉뚱한 데 떨어질 거 같으면 공중에서 마구 헤엄치듯 했다는 글도 있다).


따라서 지면에 닿을 때, 자체 몸무게와 장비 합쳐 80킬로그램 플러스에다 강하 속도에서 나오는 에너지까지 합쳐지면, 상당한 충격이 발목에 가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YOUTUBE에 나오는 독일 공수 부대원의 착지 순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웁~하는 소리가 나오려 한다.


"발목이 어떻게 견디지?"


모르긴 몰라도 크레타에서 독일군의 발목 골절도 꽤 나왔을 듯하다. 그리고 그 부상은 다시 1~2명의 전투원 부족을 가져와야 한다. 그를 보살펴 줘야 하니까.


그러나 그들보다 더 죽을 맛인 병사들이 따로 있다. 슈투룸 레기멘트, 글라이더 강습병이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의 영국 홀사 글라이더. 지금 조종사는 기도 중이다. '주여, 제대로 랜딩이 되길, 저기 저 홀사와 부딪히지 않길' 출처: pinimg.com



전쟁 중 가장 위험한 병사, 글라이더 병



이건 엔진도 없이 겨우겨우 날개에 양력을 얻고는 바람의 힘으로 날아가는데, 그 앞에선 한 물 간 폭격기나 수송기가 케이블을 연결해 끌고 간다. 그리곤 평지가 보일 때 케이블을 끊고 글라이더 저 혼자서 낙하해야 한다. 물론 조종사가 날개에 달린 여러 조종면을 조작해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겠으나, 내리는 데가 비행장 활주로가 아니다. 비교적 평평한 밭이 상당히 좋은 착륙 공간.


그런데 이해 안 가는 경우가 꽤 있을 것이다. 대형 글라이더로 강하해? 어떻게? 유럽은 우리와 지형이 다르다. 특히 서쪽과 북부 유럽은 완만한 구릉과 들판이 많다. 구릉은 우리나라의 높낮이가 약한 골프장 비슷하다고 할까?



*D-데이 때의 강습 글라이더 공격. 몇 대는 밭에 이미 착륙했고, 몇 대는 수송기에 이끌려 착륙지를 찾는 중이다. 그런데 이 작전은 대규모 공수 작전 중 유일하게 성공한 편이다. 출처: pinimg.com

 


어쨌든 평지 비슷한 데를 골라 내리려 해도, 먼저 내린 글라이더들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놓여있고 어떤 것들은 서로 부딪혀 불에 타고, 난리도 아닐 때가 많다. 거기에 내려야 한다.


미국 어느 항공 잡지의 4컷 만화가 기억이 난다. 작전에 나가는 글라이더 병들이 글라이더에 줄지어 타면서, 얼굴이 똥색이다.


"이게 대형 관짝이지 뭐야? 우린 완전히 관속에 들어가는 거라고."



*"그나마 관짝은 면했다." 마켓 가든 작전 시, 네델란드 모처에 내린 홀사. 소프트 랜딩은 아니었으나, 병사들은 살아서 나온 것 같다. 출처: warfarehistorynetwork.com



그래서 제 2차 대전 후, 이 부대는 몇몇 나라에서 잠시 유지되는 듯하다 사라진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플러스 꽁트



필자가 그 간이(?) 낙하 훈련받을 때 이야기다. 훈련생 하나가 휴식시간 때 조교한테 물었다.


"우린 비행기에서 안 뛰어내립니까?"


어이없다는 듯 조교 왈.


"야ㅡ 국방부가 무슨 돈 많다고 니들까지 비행기 태워?"


힘든 훈련인데도 그래서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매거진 '플래툰'과 ‘취미가’를 창간했고, 대한민국 이름 난 프라모델러였던 이대영 씨. 필자와는 잡지를 내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베트남 전에서의 디엔비엔 푸 전투 얘기를 하던 중, 필자가.


"프랑스 외인부대가 특별한 훈련도 받지 않고 그냥 수송기에서 뛰어내렸다며?"



*디엔비엔푸 상공에서 점프하는 프랑스 낙하산 부대. 출처: wikimedia.org



이대영 씨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그 양반은 대한민국 특전사 출신.

 

"어렵지 않아. 낙하산을 등에 메준 뒤, 그냥 뛰어내리게 하면 되는 게 또 낙하니까."


"내려가서 전투를 어떻게 하느냐, 그게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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