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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2부) - 잃어버린 17년

wenaon 2018. 1. 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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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rmy.mil



“이 자식들은 전쟁을 즐기는 거야?”



2차 대전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노르망디 상륙전 후, 어느 미군이 인터뷰에 나온다.


아마 그는 미 1 보병사단일 것 같다. 상륙전 당일 오마하 비치로 들어가 피의 전투를 치른 1사단은, 방패 패치 안에 붉은색의 큰 1자가 있어 ‘빅 레드 원’으로 불리는데, 대전 중 3번에 걸친 상륙작전을 감행한 상륙전의 베테랑들.



*출처: norbay.com



그런데 선임으로 보이는 그가, 상대했던 독일 군에 대한 멘션.


“설마 실제 그렇진 않겠으나, 이 독일 새끼들은 거의 뭐 전투를 즐기는 거 같아.”


이건 보통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되는 그 참혹한 전투를 즐기는 것 같다니...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상대.


물론 미군의 전투 커리어가 일찍 전쟁을 시작한 독일군보다 적고, 또 오마하 비치에서 방어한 독일군이, 근처 해안의 다른 부대보다 '역전의 사단'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동부전선에서 이동해 온 제 352사단이다).


그럼에도 미군 고참이 상대한 독일 병의 전투 능력이 몹시 터프하며 노련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게 일반적인 베르막트(독일 육군)의 군대였다. 세상 어떤 민족보다 전쟁 DNA가 충실한 게르만 민족의 군대.




*출처 warrelics.eu



필자는 예전, 이런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한 명의 독일 소대장이 지휘하는 소대를, 세상의 어떤 나라 소대장과 그가 지휘하는 소대로는 이길 수 없다.”



가공할 로마 군단의 전투력



국내에서도 번역돼 나온 빅터 핸슨 교수란 양반의 책이 있다. 이 사람은 미국에서 유명한 역사학 교수이며, 특히 그리스와 로마 전쟁사에 대해 해박한데, 그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사관으로 쓴 책이 있다.


"Carnage and Culture"


국내 번역서는 '살육과 문명'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거기 보면 로마의 역사가가 게르만 족의 거칠고 흉포함에 대해 기록한 게 나온다.


“그들은 원하는게 있을 때 말로 해서 얻는 남자를 가장 경멸한다. 피 흘려 뺐으면 되는데 무슨 멍청하게...”


문명, 야만주의.문명과 반대되는 영어 단어에 반달리즘이라고 있지 않은가? 반(反) 문명, 야만주의. 반달족들이 독일 오데르 강에서 유럽, 스페인, 북 아프리카로 이동하면서 가는 곳마다 로마 문명을 파괴한 짓거리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처음엔 이 게르만 족들, 힘세고 사납기만 했지 전투 스킬이 없었다. 그래서 자기들보다 훨씬 왜소한 로마 병한테, 무더기로 패하고 무더기로 죽는다.


특히 기원전 100년쯤, 게르만의 3개 부족과 벌인 전투에서 로마 군단은 그중 2개의 부족을 격파, 그 싸움터 인근의 땅이 너무도 비옥(?)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3번째 부족 킨블리. ‘웨르가에라’ 들판에서 대 전투를 벌이는데, 여기에서 로마 군단은 이 킨블리 족 10만여 명을 전사 시키고 살아남은 6만 명을 잡아다 노예로 파는 대 승리를 거둔다.


놀랍게도 로마 쪽 전사는 300명!



그래도 게르만 족은 살아남는다



기술적으로 매우 세련되며 효율적 전투를 하는 가운데, 살해 능력을 풀(full)로 발휘했던 이 로마 군단에게, 투박하면서 무식하게 덤비기만 했던 게르만 족. 그래서 많은 게르만 족이 로마의 군문 하에 들어가고, 그들 땅에는 로마 군단의 요새가 건설되곤 하는데, 돌연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난다.


아르미니우스라는 게르만 영웅의 지휘 하에, 세계사에 남을, 로마 군에 상대로 한 대승.


기원후 9년에 벌어진 토이터부르그 전투다. 


로마 군단 무적의 진 ‘레기온’이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숲 속에서의 백병전이었다. 그래서 정예 3개 군단과 3개 기병대, 그리고 보조 부대 여러 개가 그 숲에서 전멸한다.



*평지에서의 싸움이라면 로마 군단을 누구도 당할 수 없다. 그런데 게르만 족은 이 곳에서 개싸움을 펼친다. 3개 군단 전멸의 원인이다. 출처: daum 무비



지금의 달력 8월의 영어 이름, 오거스트에 해당하는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슬픔에 빠져 ‘바루스여, 내 군단을 돌려다오.’라고 탄식을 하게 했다던 그 유명한 전투다.


물론 로마는 나중에 다시 토이터부르그 숲으로 들어가, 복수를 한다. 그리고 처참하게 백골이 된 시신들을 수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패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로마는 전쟁 자체가 일종의 비지니즈나 마찬가지였다. 이익이 생기는 장사. 새로운 땅으로 쳐 들어가 저항하면 죽이고, 나머진 노예로 팔거나 과중한 세금을 부과, 거둬들였으니까.


살해와 포로획득, 세금 부과, 이 3종 세트.


그런데 이때 로마 쪽에 생기는 전쟁의 상처는? 별로 크지 않았다. 워낙에 전투력이 뛰어났기 때문.



*천년 제국 로마의 병사들. 맨 가운데는 아마 '센추리언'일 듯. 1백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백인대장. 로마 군단의 강함은 이 산전수전 다 겪은 중대장 격, 센추리언의 공이 크다. 출처: stuffpoint.com



그런데 토이터부르그에서의 패배는 뼈가 시렸다. 그래서 복수를 하긴 했으나, 게르만 땅에서의 영토 확장은 정신력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동력을 잃어버린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죽을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얼마나 그 패배가 가슴에 맺혔으면.


“더 이상, 들어가지 마라.”


게르만 족은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이 살아남은 게르만은 파워가 약해지는 로마 군에 용병으로 들어가, 일원이 되기도 하다가 나중엔 로마의 종결자가 된다.


필자의 고교시절 교과서에도 나왔듯,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가 결국 로마를 멸망시킨다."


그런데 게르만 족들은 로마의 숨을 끊었지만, 그 문명을 완전 파괴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을 받아들인다. 이후에는 필연적으로 오는 기독교 신앙도 받아들여, 유럽 대륙에서 중요 민족, 중요 국가로서 자리매김한다.


천년 제국 로마는 멸망했으나, 그들은 대륙에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에 반해 켈트 족은 애퇴(哀退)를 했지만...



전투 승리의 3대 조건



전투에서 이기려면 무기 시스템을 제외하고 보통 이 3가지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기도 한데, 피지컬과 멘탈과 그리고 스킬.


힘이 있고, 투쟁심이 있어야 하며, 싸우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는 3가지. 그런데 게르만 족은 원래 피지컬과 멘탈 밖에 없었고 스킬은 매우 조잡했으나, 로마에게서 그것까지 배워, 중세에 들어서며 유력한 국가, 유력한 민족이 된다.


그리고 나중 프로이센이라는 일종의 강력한 전투 국가가 발흥하고, 다시 독일 통일을 이뤄낸 뒤, 그들은 20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제1차, 2차 대전이다.



난데없는 축구 이야기



이야기를 잠깐 바꿔 축구에 대해 살펴보자.


'축구는 전쟁이 아니고 전쟁 그 이상이다'


이런 말이 있듯 축구 게임이라는 건 피지컬, 멘탈, 스킬 이 모든 걸로 쟁투하는 스포츠다. 우리말로 바꾸면 체력과 투지 또는 정신력, 그리고 기술. 


그런데 지금의 세계 축구. 어느 나라가 FIFA 랭킹 1위인가?


당연히 독일이다.


그리고 독일은 언제나 월드컵 우승후보이며, 거의 언제나 결승에 올라가며 우승컵도 브라질과 더불어 가장 많이 들어 올린다.




*우리가 완전 죽 쒔던 홍 명보 호의 2014 브라질 월드컵, 독일은 시쳇말로 브라질을 7대 1, 완전 발라버리고 결승에서 알젠틴을 격파한다. 그렇다면 가슴의 별 하나가 추가될 것이다. 출처: tribune.com



독일의 우승은 그 3가지 조건에서 항상 톱클래스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뭔가 또 다른 게 있어야 한다. 그게 뭔가?


체력과 투쟁심, 기술 위에 또 하나의 조건은? 


분데스리가에서 오랫동안 뛴, 불세출의 공격수 차범근은 이런 말을 했다.


"독일 축구는 화려하지 않다. 개인기도 결코 최고는 아니다. 축구 아트와 거리가 있다. 그런데 하다가 보면 결국 독일이 이긴다. 그러니까 승부처에 강한 축구다."


바로 그 승부처라는 것.


승부에 강하다는 거다. 물론 독일 선수들이 개인기가 없다는 게 아니다. 화려한 축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아트 사커나 스페인의 아름다운 패씽 축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화려한 개인기 만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결국 승리하는 횟수가 가장 많다.


그리고 승리라는 건 전투의 최종 목적이며 완성이다. 한 마디로 말해, 독일은 전투에 특화되고 승부처를 아는 민족이라는 얘기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아무래도 이 부분이 한 수 뒤진다.


1차 대전 시, 종국적으로 독일이 패하긴 했지만, 단 한 평의 자기네 땅도 내주지 않고, 시종일관 프랑스나 벨기에 땅에서 싸운 걸 봐도 그들의 군사적 강함이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패한다. 전선에서의 문제라기보다, 후방인 독일 국내의 소요와 혼란이 큰 이유.



그리고 패배 20년 후



독일이 1차 대전의 굴욕적 항복 문서에 사인한 뒤, 15년.


한 남자가 독일의 최 상층부에 올라선다.


히틀러였다. 그는 집권한 후 재무장을 선언하고, 독일의 산업을 부흥시키고 독일 군 재무장에 대한 광폭적 행태를 취한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금 전 세계를 상대로 총체적이며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다.


제2차 대전. 이 전쟁은 1차 대전 때와 스케일이 달랐다. 지상전만 해도 그때는 서부전선, 즉 벨기에나 프랑스 들판과 구릉에서의 참호전이었으나, 이번엔 노르웨이에서부터 지중해와 이탈리아, 북 아프리카. 러시아 벌판이었으니까.


그리고 파죽의 진격을 계속, 동부전선 러시아에선 볼가강 강둑에서 아시아로 이어지는 광대한 강 건너 풍경을 보게 된다.



*볼가강 변의 독일병, 유명한 슈마이셔 기관단총을 메고 있다. 출처: alamy.com



거의 전 지구적이라 할 수 있는 전역에서 전투를 하고, 승리를 거머쥔 독일 군.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1939년 폴란드 침공 이래 승리를 계속하던 그들은 서서히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쟁 개시 이후, 만으로 6년, 히틀러와 수뇌부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 갇혀버린다.


뒤이어 자살한 히틀러 시체 위로 휘발유가 뿌려지고 소각된다. 그의 마지막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시체가 모스크바 광장에 거꾸로 걸려, 그자들 구경거리가 되게 하지 마라!"


숱한 전쟁터에서 나치 깃발을 휘날리며 막강하기 이를 데 없던 독일군. 그런데 결국은 패배의 길을 걸었고, 자랑스러웠던 군기와 철십자, 스바스티카 깃발들은 적국의 광장에서 불태워진다.


인류 사상 가장 불길했으며 그만큼 악행을 저질렀으나, 전투력만큼은 무적이었던 군대. 나치 제 3제국의 군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럼 이제 이런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들은 왜 패배했는가? 



잘 하면 이길 수 있었다



일부 전쟁 연구가들에 의해 “잘만 했다면 히틀러는 이길 수 있었다.”는 주장은 끝없이 나오고 있다. 패배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일본의 전쟁 속어에 이런 게 있다. 그들이 전국시대와 태평양 전쟁을 분석할 때 잘 쓰는 말이다. 


“승리에는 이유가 없어도, 패배는 그 원인이 꼭 존재한다.” 


독일은 패배했고 그중 으뜸이 되는 이유로 꼽는 게 있다. 



전쟁이 너무 빨랐다



전쟁을 너무 일찍 시작했다는 것. 이 희대의 독재자는 집권 후 2년 만에 재무장을 선언하고 그로부터 4년을 집권한 뒤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게 첫째 이유다.


그 전의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고 있었다. 17년간의 공백기가 있었다는 얘기다. 병력에 제한이 있고 주요 무기들을 만들지 못하게 한 조약이다. 그런데 단지 몇 년 정도의 재 무장 과정만 거치곤, 인류 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정말이지 그들은 잘만 하면 이길 수도 있었다. 재 무장 이후 일찍 시작한 불리한 전쟁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착각을 했고, 또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전쟁터에서. 점령지에서, 본국 독일 내에서.


바로 그 실패의 원인들을 분석해 가다 보면 자연스레, #우 이라는 카테고리, 즉 ‘우리 모두 전략가가 됩시다.'에 딱 맞아떨어지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 2회 끝)





김은기의 커피 테이블 토크


*제공: @snaparker



이 글을 읽을 때, “정말 그랬어?”하며 놀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미쳤나? 독일이 겨우 4년 재무장하고 전쟁을 일으켜?"


분명히 그렇다. 우리도 이제 영국과 프랑스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무기 만들겠다며 선언하고 4년 뒤, 그러니까 1939년에 영국과 프랑스, 그 다음은 러시아, 그 다음 미국까지 합세한, 연합군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한 마디로 맙소사!


더 놀라운 것도 있다. 천하무적 독일 기갑군단에 대해서다. 당시 독일은 1935년까지 기갑부대 라는 게 아예 없었다는 얘기를 누가 믿을까? 2차 대전 터지기 4년 전까지, 그런 부대는 진짜 없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1호, 2호 탱크를 만들고, 이어서 3호 탱크에 가서야 영국과 프랑스와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된다.



*총 중량 8톤으로 매우 가벼운 2호 탱크, 주포는 없고 달랑 20밀리 기관포에 장갑은 14.5밀리로 1센티 조금 넘는다. 그러나 사실상 전격 작전 시 주역이나 마찬가지다. 출처: wikipedia



그래도 전 유럽의 들판을 휩쓴다



그런데 알다시피 독일 기갑군단은 온 유럽을 휩쓴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따라서 이 글 첫머리부터 나오는, 게르만 민족의 전투 적성과 강인함에 대한 필자의 견해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이해하리라 믿는다.


물론 그 치명적 전투력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선 조금도 챙기지 않았던 히틀러와, 역시 같은 부류로서 도덕성이라곤 전혀 없던 나치 측근들을 위해, 맹목적으로 사용하여, 독일인들은 참 많은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패배의 길을 더듬어 사라진다.


1933년에 세워지고 1945년에 사라진, 이 독일 제 3제국의 발흥과 이어진 흥망성쇠. 매우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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