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9부) - 소련 침공 II
#76 독일은 제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9부) :: 소련 침공 II
1941년 가을, 모스크바가 저기다!
첫 해는 일단 화려하게 보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눈부신 전진, 또 전진!
그러나 끝에 가서 안 좋은 일이 터진다. 모스크바를 눈 앞에 두고 지체. 독일군 자체의 전투력 문제라기보다, 그놈의 추위가 너무 일찍 들이닥쳤기 때문. 전진은 스톱되고 모스크바 인근에서 대대적 공방이 벌어진다.
*당시 소련의 포스터, 모스크바를 위해 일어서자! 출처: wikimedia.org
스탈린그라드나 하루코프, 쿠르스크처럼 많이 알려진 경우는 아닌데 모스크바를 둘러싼 이 공방전, 대 병력이 참가한 의외로 어마어마하게 큰 전투가 된다. 실제적으로 제2차 대전을 포함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투!
소련이 사생결단으로 계속해 병력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스크바가 점령되니. 그러나 여러 면에서 우세한 독일군, 추위 속에서도 그 강함이 증명돼 소련에게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강요한다.
무려 1백만 명의 사상자! 여기에 독일군 사상자는 17만 조금 넘나? 이 전투가 얼마나 큰 전투인가를 말해 주는 사상자 숫자인데 어찌 됐던 양국 군대의 전사자 비율은 1대 6이다.
그러나 모스크바 점령은 불발된다. 스탈린과 주코프가 무지막지하게 병력을 들이밀었기에.. 스탈린도 그렇지만 2차 대전 소련 군 최고 지휘관이라는 칭호를 듣는 명장 주코프. 그 역시 인명 소모에는 별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었다.
두 번째 해 1942년이 온다
상대에게 막대한 병력 손실을 줬으나, 그래도 독일군이 맛 본 첫 번째 좌절, 모스크바 공방전. 그리고 해가 지나 1942년의 봄이 온다. 눈과 얼음으로 인해 진흙천지가 되는 시기도 지날 즈음.
"오냐! 이제부터 진짜다."
들판이 푸르러 갈 때 발동된 프라우 작전! 프라우는 '파랗다'는 독일 말로 청(靑)색 작전이라 할까?
역시 독일군의 전투력은 명불허전. 모스크바 쪽은 워낙 중첩된 방어선과 함께 대병력이 포진. 전선이 고착이 된 체, 러시아 중앙과 남부 지방으로 전진한다. 첫 해 겨울을 그럭저럭 버텼던 소련군 역시 저항을 지속하는데, 다시 열세를 면치 못 한다. 아직은 독일군을 막을 정도의 능력이 안 되기 때문.
그중 독일 제 6군이 소련 깊숙이 돈 강과 볼가 강이 합쳐지는 데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그 강가에 이 도시가 있었다.
"스탈린그라드!" 그 스탈린그라드가 맞다. 인류사의 기점.
운명의 도시
총 병력은 24만!
2개의 기갑 군단과 함께 여타 척탄병 내지 보병 군단이 있고, 헝가리 군단도 포함되어 있는 대 병력.
운명의 전투가 벌어진다.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쉽게 점령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상하게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양측은 점점 더 병력을 쏟아붓는다. 전략상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으나, 이름만큼은 엄청난 의미가 있었기에... 한쪽은 죽어라 공격, 한쪽은 죽어라 방어. 그리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 겨울. 다시 겨울에 들어선다.
*사진 제목이 '스탈린그라드 1942'다. 그런데 이들 중 몇 명이 살아남았을까? 출처: ww2today.com
우린 오픈된 벌판에서 강하다!
첫 겨울 모스크바 공방전에 이어, 두 번째 겨울 스탈린그라드. 그런데 이번 전투 스타일은 시가전이었다. 소련 국토 특유의 오픈된 스텝 지형에서의 전투가 아닌, 시가지 전투. 이 구역, 저 구역.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이동하며, 하나하나 수색을 하고 공략해 가야하는 스타일. 그리고 전투는 점점 더 처절해진다. 하우스 투 하우스. 도어 투 도어 스타일이 되니까.
따라서 지금까지 해온 전투와 정말 달랐다. 정통파 독일군 전투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
독일군이 지금껏 평원을 달리며 상대를 패배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은 건, 기갑 부대들이 소련군 방어 거점 좌우로 들어가 포위-협공하는 전법을 주로 썼기 때문이다.
평원에서 포위돼 봐라. 방법이 없다. 상대 주력은 발 빠른 기갑부대, 후퇴해 봤자 어디로 가나? 산악 지대가 있으면 거기라도 기어올라 가는데 그런 데도 없고.
그래서 독일군은 지금까지 대량의 포로를 잡으며, 전진해 왔다. 헌데 이 놈의 '스탈린그라드'에서 하는 짓이란 뭔가? 부서진 건물 더미에서 하는 완전 백병전, 그냥 개싸움이다. 급하면 곡괭이와 삽으로 백병전을 벌이고, 문틈으로는 화염방사기를 품어대, 옆방에 숨어있는 적을 태워 죽이고. 하수도를 통해 적의 뒤쪽으로 침투하는 비정상적 전투.
문제는 이런 전투를 오히려 소련군이 잘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날씨는 자꾸 추워진다.
*시가전은 골치 아프다. 출처: tumblr
그런 악전고투의 시간전 속에 결국 사단(事端)이 터진다. 히틀러로서는 끔찍한 사단.
35만 명이 갇혀 버리다
금방 패배할 것 같던 소련군이 시가지 부분, 부분을 장악하고 버티는 이유가 있다. 뒤에 강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군이 포위를 하고 압박해도 뒤 쪽이 강이라, 강 건너편으로부터 물자와 병력의 보급을 계속해 받는 상태(영화 ‘에네미 엣 더 게이트’에서 주인공 ‘주드 로’와 신병들이 작은 배로 강을 건너가는 장면이 있다. 하늘에선 독일의 스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공격하고. 이게 그때 상황이라 생각하면 된다. 강을 통해 스탈리그라드 방어군에게 필사적으로 물자와 병력을 지원한다).
그래서 독일이 쉽게 도시를 완전점령 못하고 있는데, 천지가 뒤집힐 일이 터진다. 거대한 역 포위다. 포위를 하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크게 포위하는 역 포위.
스탈린그라드 바깥쪽에서 다른 소련군 대 부대가 크게 기동, 시가지를 포위 중인 독일군을 다시 또 포위해 버린 것. 먼 북쪽을 지키던 루마니아 군 방어선을 뚫고 소련군 대부대가 내려와 포위망을 완성한 것이다. 정신없이 시가지 안에서 개싸움 중인 독일 6군이 등 뒤로부터 칼을 맞는 격.
"뭐야? 이게 뭐냐고?"
히틀러와 장군들은 난리가 난다.
"스탈린그라드에 24만, 전체 포위망까지 합치면 35만! 맙소사! 어떻게 이런 많은 병력이 갇혀?"
"포위망을 뚫어 제 6군을 구해라!"
6군 구출의 명령이 내려졌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험한 날씨와 함께 폭풍도 불어 닥친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 외곽 포위망을 완성한 소련군의 결의가 단단하고, 아무래도 작년의 그 엉성한 소련군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혹한의 겨울.
따라서 제2차 대전 중 최고의 머리 좋은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만슈타인도 애를 쓰지만 포위망을 뚫고 스탈린그라드에 진입하긴 역부족. 하늘에서 융커스 수송기가 포위된 6군에게 연신 물자 보급을 해 주나, 주변의 소련군 고사포에 의해, 격추되는 숫자와 함께 보급량은 점점 더 반비례해 간다.
*루프트바페, 독일 공군의 융커스 52 수송기. 그러나 점점 더 착륙 횟수가 줄어든다. 출처: asisbiz.com
극심한 추위 속 절망적 전투를 계속하던 제 6군.
역전의 부대였다. 전쟁 초기부터 빛나는 커리어를 가진 부대.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벨기에 국경 쪽 연합군과 싸우다가 프랑스로 진입한 영광의 부대. 그리고 발바롯사 작전에는 키에프 포위전, 1차 하루코프 전투, 또 남부 집단군에 속하지만 모스크바 전투에도 참가 숱한 공적을 세운 부대.
그런데 지금은 그 빛나는 커리어는 어디 가고... 병사들에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부상병이 되어, 간간히 오는 수송기에 탑승, 독일로 돌아가는 것.
그 비행장마저 소련군에게 뺏겨 버린다. 방법이 없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바로 다음 1월, 추위와 굶주림에 최후의 저항을 계속하던 6군은 눈 속에서 항복한다. 독일인들이 원래 사람으로도 안 봐주던 슬라브 민족 소련군한테.
*출처: alamy.com
처음으로 소련군이 완승을 거둔 것이다. 독일군은 처음으로 완패를 당했고. 그것도 2개 기갑군단이 속해 있던 베르막트(독일 육군) 정예 1개 군이!
터닝 더 타이드(Turning the Tide)
일본의 함대형 정규 항공모함 4척이 수장된 미드웨이 해전을 흔히 '터닝 더 타이드'라 한다. 태평양에 있어서 거대한 조수의 흐름을 바꿨다는 이야기다. 밀물을 썰물로.
스탈린그라드도 마찬가지다.
불패의 독일군, 싸울 때마다 승리의 트로피를 수집하던 그 강건한 군대는 예하 제 6군을 비롯, 헝가리와 루마니아 등 추축국 군대 포함 35만명.이들이 절단난 것이다.
물론 독일군에 당당히 겨룰만 실력을, 아직 소련군이 갖췄다고는 할 수 없었다. 시가전이라는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다. 소련의 평지 전투력은 스탈린그라드에 이어 숨 돌릴 새도 없이 벌어진 하르코프 전투에서 증명됐다.
제3차 하르코프 전투다.
"이 여세를 몰아, 독일놈들을 그냥 더 두들기자!"
스탈린그라드 승리 직후, 소련군은 자신만만했다.
"세상에 베르막트 1개 군을 우리가 전멸시켜 버리다니!"
그래서 이젠 보이는 게 없었다.
"이 기세를 몰아 계속해 밀어붙이는 거야!"
그래서 독일 점령지역인 하르코프 시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훨씬 더 배워야 했다. 만슈타인이 쳐 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소련이 다시 또 개피 본 전투. 그러나 이 전투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병사고 지휘관이고 할 것 없이, '이제 조금만 더 잘하면 붙어볼 만 해'라는 착각을 한다. 그리고 그 전투 이후, 소련 영토에 묘한 부분이 생겨난다.
거대한 발지 형태의 돌출구. 모스크바로부터 스탈린그라드로 내려오다가 중간에 있는 거대 돌출 구역. 이 안에 소련군이 포진하고 그 위쪽과 남쪽에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형태.
히틀러와 그 측근들은 유혹을 받는다. 남쪽과 북쪽이 각각 일제히 전진, 협공하는 유혹. 남쪽에선 올라가고 북쪽에선 내려오며 돌파하면 돌출 공간 안의 소련군은 어떻게 되나? 그 안에 있는 것만 5~ 6개 군 이상. 그리고 그 뒤에도 그 정도 병력이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병력을 완전 포위. 궤멸해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스탈린그라드 패배의 복수를 몇 배로 하는 게 된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다.
*분홍색 돌출구 안에 숱한 소련의 군(각각 여래 개의 군단을 갖고 있다 )이 포진돼 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도 여러 개의 군. 이걸 위아래에서 협공, 돌출구 부분의 뒤를 끊어버린다. 그러면 그 안의 소련 군들은 가만 놔둬도 전멸... 히틀러의 거대한 희망이었다. 출처: themaparchive.com
쿠르스크 전투
전투는 시작된다.
독일군 90만, 소련군 100만 이상, 그러나 뭣보다도 대량의 탱크가 동원된, 사상 최대의 기갑전! 신형에 속하는 5호 전차 판테르(표범)에다, 엘레판트 같은 초 괴물 '탱크 디스트로이어'가 처음 실전에 참가한 것도 이 전투다.
*압도하는 존재감과 최고의 위협도! 상대 탱크만 잡는 괴물 엘레판트. 출처: 2today.com
그런데 전진은 쉽게 되지 않는다.
소련군 저항이 완강했기 때문. 더구나 그들은 예전의 소련군이 아니었다. 비록 방어 형태의 전투였으나, 그들도 이제 야전에서 독일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작전은 실패한다.
히틀러가 후퇴 명령을 내린다.
*출처: ww2today.com
공격에서의 동력을 잃어버린 독일군
이제 독일군은 동부 전선에서의 진짜 이니셔티브를 뺏긴다. 모든 힘을 다 쏟아 쿠르스크로 들어갔으나 작전 실패! 다시는 대규모 공세를 감행할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1944년,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전쟁의 형태는 완전 거꾸로 된다. 소련군이 독일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니까.
바그라치온 작전.
소련판 대 전격 작전이라 할 만한 공격. 그리고 이 작전을 승리로 이끈 소련군은 독일 베를린을 목표로 다시 전진을 시작한다. 그곳 베를린엔 누가 있나?
히틀러다.
어째서 이런 일이?
어쩌다 이런 결과가 벌어졌나? 히틀러는 4년 만에 세계의 정복자에서(그는 장군들에게도 자주 말했다. 세상을 정복했고, 세상을 정복하게 해 줬다고), 이제는 손을 자주 떨며 그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초라한 늙은이로 변해 버렸는가?
그리고 얼마 뒤 부하들한테.
"내 시신을 절대 스탈린한테 넘기지 마!"
그러면서 휘발유로 완전 태워 버릴 것을 부탁하는...
도대체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가?
북극 가까운 바다 바렌츠 해로부터 양광(陽光)이 쏟아지는 그리스 에게해, 다시 지중해 건너 북아프리카를 석권하고 그 군단은 피라미드 아래로 승리의 탱크 퍼레이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몸을 떨던 히틀러가.
다른 이유가 없다.
인터넷 용어(?)로 불곰국, 현 러시아, 당시 소련. 바로 소련으로 쳐들어갔기 때문이다. 소련을 상대로 발바롯사 작전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그 명령은 대 실책 중의 실책이었다.
그들의 땅은 너무도 넓고, 겨울은 길고 끔찍이 추운데다, 눈이 녹을 무렵 이면 길은 엉망진창 진흙탕으로 변한다.
*Tiger in the snow. 출처: pinimg.com
게다가 이 놈의 나라엔 인구가 왜 그리 많은 지, 거기에다 또 괴상한 게 나타났으니 그것은 T-34. 당시의 어떤 독일 탱크보다 종합적 전투력에서 한 수 위인 탱크.
이른바 'T-34 쇼크'.
히틀러는 러시아를 너무 우습게 봤다.
"걔네들 집이 엄청 큰 거 같지? 천만에, 발로 문짝을 한 번 걷어차면 금방 무너져."
장군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은 크나큰 착오.
침공이 시작되고 2~3달 정도된 매우 이른 시점. '할더' 참모총장은 벌써 일기장에다 이렇게 쓰고 있었다.
"우리는 소련의 사단 수를 2백개 조금 많은 정도로 계산했다. 그런데 웬걸 3백60개 이상이었다. 그러니 10개 사단을 격파해도 또 다른 10개 사단이 나타난다."
전격전의 창시자이며 소련 침공시 기갑 집단을 이끌었던 구데리안(당시의 기갑 차량에 G가 있으면, 그건 구데리안 부대 소속이다).
*출처: wikimedia.org
기갑전에는 천재적 안목이 있던 그도 잘 못 생각한다.
"소련은 구식 탱크들까지 죄다 끌어 모아봤자 1만대 정도 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더블인 2만 대도 넘었다."
물론 그렇게 많다고 해도, 초기 독일군의 질(質)적 수준은 소련군의 양(量)을 뭉갤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군은 동장군이 마련한 시간 속에 경험을 축적한다. 숱한 패배에서 배워 나간다. 저력이 있었기 때문. 히틀러와 장군들은 분명 러시아에다 발을 괜히 디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일은 2차 대전에서 왜 패배했나? 히틀러의 실책(하편 끝 )
커피 테이블 토크
*제공 @wenaon
잠깐 미군으로 얘기를 옮겨보자. 그들은 좀 늦게 참전했지만 하늘과 땅, 바다에다, 전 지구적으로 치르는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우선 일본과의 전쟁. 태평양을 무대로 무수한 해전과 상륙전을 치르는 전쟁. 동시에 대서양 너머 독일군하고도 싸웠다. 그래서 미군은 독일과 달리, 대양을 포함한 전쟁의 스케일이 매우 넓었다.
그런데 전사자 총 숫자는?
30만명 정도.
그렇다면 동부 전선에서 싸웠던 두 나라는?
끔찍이도 전사자가 많던 동부 전선.
소련 적군(赤軍)만 해도 1천만 명이 전사했고(정말로 무지 많다), 독일군은 370만 구 이상을 시신을 땅에 묻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 터 자체가 소련이었으니, 소련 민간인도 1천5백만. 아니 요즘은 그걸 훨씬 더 잡아준다.
그러니 독-소 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이며 동시에 거대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큰 전쟁은 없었다.
한 예로 전쟁 개전 3년째에 벌어진 쿠르스크 전투. 스탈린그라드 이후 딱 반년 만에 벌어진 전투다. 그런데 이건 전쟁 속에 벌어진 한 '전투'라 해도 규모가 전투의 규모가 아니다. 전쟁 중에도 매우 큰 전쟁이다.
양쪽 합쳐 병력 220만, 탱크는 독일이 2700대, 소련이 3300대. 그리고 투입된 항공기들은? 역시 수 천대. 특히 탱크 중에는 그 유명한 타이거와 판져(판테르), 엘레판트가 투입돼, 그야말로 장갑 괴물체들의 경연장이었다.
*Tiger in the Krusk. 출처: militaryhistoryours.co.uk
더구나 이 전투가 벌어진 들판이 얼마나 큰지, 대전차 방어진들은 달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또 양쪽 진영, 최고 두뇌를 가진 지휘관들의 책략과 결단이 구현되는 맹렬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글을 쓰다 보니, 이 전쟁 특유의 광대함과 광폭함에 나도 모르게 몰입되고 오버가 돼, 페이지 수가 점점 늘어나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탈린그라드, 제3차 하르코프, 쿠르스크, 바그라치온 작전 등. 그야말로 하나 같이 다 흥미진진하며 스케일 넓으며 처절의 극을 향하는 전투 아니었나?
그러나 부득이 써 놓은 걸 다시 줄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번 글은 독-소 전쟁의 다이제스트 판이 아니기 때문. 순전히 히틀러의 전략적 실책에 관한 글.
'제2차 대전, 독일은 왜 패배했나?'
'우모전(우리 모두 전략가가 됩시다)으로 볼 때 히틀러의 실책은 뭔가?'
그런 실책 시리즈에 맞는 적당한 분량으로 끝내려 하는데, 난데없는 얘기가 들려온다. 또 그 얘기는 이번의 글과 거의 상당 부분 매치가 되고.
독일의 제2차 러시아 침공이 있었다
"뭐라고?"
"2차 침공이 러시아에서 행해졌어? 아니 언제?"
그러다가 침공은 발바롯사 작전 때처럼 좌절됐단다. 독일 전차 군단은 다시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의 수훈갑이 누구인가? 누가 그 무적의 전차 군단을 막아냈나?
대한민국 팀이다.
피치위의 축구 대표, 11명의 전사들이!
이거, 필자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이 하는 이야기다. 용맹한 한국인들이 독일의 러시아 침공을 저지했다고.
그래서 필자가 YOUTUBE를 보다가 발견한 ‘해외 반응’편 중 재미있는 글을 몇개 옮겨볼까 한다. 본 편의 내용과 정말 싱크로율 120%. 그러나 밀리터리 마니아가 아니라면 언뜻 이해가 안 가는 글. 마니아들만 큭, 큭.. 거리며 행복한 웃음을 머금을 수 있는 글이다.
"독일은 러시아에만 들어가면 전진이 안 돼."
다른 네티즌이.
"공식적으로 러시아에서 이렇게 퇴각하는 게 2번째라며?"
"그래, 옛날에도 한 번, 이번에도 한 번."
(그렇다. 70 년 전 히틀러 때 한 번. 이번의 메르켈 총리 때 또 한 번이다.)
다른 네티즌이 거든다.
"전차군단 퇴각은 러시아에서 추위가 너무 일찍 와서 그래."
한국이 이긴 날짜는 6월 27일. 우리 팀이 그 무시무시한 러시아의 동장군이었던 것이다.
한국 팀은 TD, 탱크 디스트로이어!
*출처: wikimedia.org
2014년 월드컵 결승, 홈팀 브라질을 7대 1로 대파한 게르만 전차 군단. 그런데 다음 월드컵 때 한국을 만나, 일찍 퇴각한다는 거 예상이나 했을까?
그렇다.
이번의 우리 팀, 독일 식으로 약트 판저(사냥 전차), 미국 전차부대 용어로 '탱크 디스트로이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