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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이스라엘 전투기 크피르

#15 앞선 주자, 미그킬러 네세르 / 이스라엘 전투기 크피르 - 2부

by wenaon 201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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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전투기 크피르 - 1부에 이어.





*네세르의 오인 방지용 도색. 기체 여러 곳의 검은 테두리 주황색 삼각 무늬는, 이집트 공군 미라주와 착각하지 말라는 주의용이다. 돈 많은 리비아가 프랑스로부터 미라주5를 대량 구입, 이집트에다 넘겨줬기 때문이다. 출처: img11.hostingpics.net)




어찌됐건 네세르는 응급(?)전투기다. 훔친 설계도로 만든 땜빵. 그러나 이 신생 독수리(히브리어로 독수리란 뜻). 그런건 신경 안 쓴다는 듯 '불타는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전을 펼친다. 그리고 격추 숫자는 무려 1백여대!


아니 정말 1백대라고? 당연히 놀라운 숫자다. 주력 전투기 한 기종만 수천, 수만대씩 만들어지던 제2차 대전의 때가 아니다. 소수의 고성능 제트기로 하늘을 넓게 커버하며, 그래서 전투기끼리 만나는 경우가 대폭 줄어든 현대의 전쟁.


그리고 상대는 소련제 전투기다. 이놈들은 언제나 가볍고 날렵하다. 오직 스피드와 상승력을 중시한다. 다시 말해 공중전에 특화(特化)된 전투기. 그래서 쉬운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이쪽 네세르는 공중전에 적당치 않다는 델타익(삼각날개).


당시에는 삼각날개가 공중전에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후퇴익이 훨씬 유리하다는 생각. 미그21이 똑같은 삼각날개라 하더라도, 뒤쪽에 추가로 수평 꼬리 날개가 붙어 있어, 공중전에 들어가면 미그21이 유리할거란 예상.



*샤프하고 빠른 미그21, 데타익인데도 꼬리날개가 붙어 있어서 실질적으로 미라주보다 한끗발이 앞선다고. 출처: cdn-www.airliners.net



사실 기존의 미라주3는 같은 기량을 가진 파일럿이 조종할 경우, 미그21과의 공중전에서 그 안쪽에 든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백중세에서 약간 뒤쳐진다고 할까? 격렬한 선회싸움 중, 끝에 가서 한끗 뒤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미라주를 다운 그레이드한 형식의 네세르는 어떨까? 폭장량과 항속력에서 미라주에 분명 앞서나, 격투전에선 아무래도 조금 모자란다. 미라주는 순수 전투기인데 네세르는 폭격쪽으로 전향한, 전폭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격투전 능력으로만 본다면 이렇게 된다. 네세르 위에 미라주3, 그 위에 미그21. 네세르가 꼴찌다. 따라서 미그21과 이 짝퉁 델타 전투기가 격투 전에 들어가면 51 대 49 정도로(필자의 계산이다), 미그21이 유리하다. 그런데도 네세르는 미그기21을 압도했다.



*당시 네세르의 상대였던 시리아의 미그 21,시리아 공군도 이집트처럼 보안에 충실(?), 릴리즈된 사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프라모델로 보는 수밖에 없는데. 참 이상한건 군사보안에 충실한 군대일수록, 실력이 형편 없다는거... 출처: ipmsusa3.org



물론 1백대 안에는 미그17, 미그19 등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격투성능에 하자가 있는 기체들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저고도 싸움엔 미그17이 더 까다로울 수 있다.


미그19 역시, 정비성 등 다른게 나빠 그렇지, 일단 하늘로 올라가면 격투전에서 의외로 강인함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미그17, 미그19, 미그21. 모두 함부로 할 수 없는 상대다. 그런데도 위대한 짝퉁 네세르는, 이 미그 패밀리들을 압도했다.



*소형이면서 초음속이 아닌 미그17. 허나 이게 물건이다. 베트남전에선 미공군의 마하2급 전투기들을 자주 떨어뜨리곤 했다. 출처: warbirddepot.com



이 미그 패밀리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얼까?


간단하다. 기량이 월등했기 때문. 파일럿의 질과 조종 수완. 그리고 맹렬한 공격적 마인드.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조건을 제외하고도, 다른게 있었다. 미라주 계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이기도 한 30밀리 데파(DEFA)기관포. 이 프랑스제 중화기는 발사속도가 빠르며, 탄도가 안정돼 있다. 더구나 30밀리 아닌가? 경전투기나 마찬가지인 미그기들은 일단 맞았다 하면 그냥 공중분해!



*데파 기관포, 제3차 중동전에서 미라주3가 격추시킨 대부분의 적기는 미사일이 아니라 여기에 얻어 맞았다. 분당 1800발을 토해내는데, 이걸 기체 아래에 쌍으로 갖고 다니니, 합이 3600발! 격투전시 서로 스치고 지날 갈때, 단 0.1초만 얻어맞았다 해도 6발 아닌가?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리게 하는 발사속도다. 출처: ckclub31.ipmsfrance.org



또 하나 비밀무기가 있었다. 이스라엘판 사이드와인더로 '샤프릴'이라는 공대공 미사일이다. 샤프릴은 히브리어로 잠자리라고 하던가? 그래서 격투전 능력에선 조금 불리하다해도, 이 어린 독수리(네세르)들은 콕핏(파일럿이 앉는 시트와 주변 조종부)에 앉아 조종하는 파일럿의 기량과, 프랑스 데파 기관포, 거기에 샤프릴까지 더해져, 그 압도적 스코어를 냈던 것이다.


그런데 달이 차고 해가 지나자, 이스라엘 공군은 뭔가 네세르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무장 탑재량이 늘었다고 하나, 그것은 기존 전투기인 미라주3보다 낫다는 것뿐, 웬만큼 실으면 파워가 부족했다. 더구나 미라주는 유럽날씨에 적합한 타입, 아열대 지방인 이스라엘과 맞지않고, 고원에서의 출격도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파워가 문제일 듯 싶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파워풀한 전투기들이 나오는데, 추력 6톤은 약해."



*이륙하는 네세르, 모든 게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엔진 파워만은 겸손한 편이었다. 출처: image.search.yahoo.co.jp



훔친 설계도로 만든게 그 아타 9엔진이다. 이게 언제적 엔진인가? 제2차 대전 직후, 스위스로 망명해온 독일인의 설계가 오리지널이다. 아타라는 이름도 그들 망명인들의 설계 장소를 뜻하는 '아틀리에'에서 유래된 것.


"가만 그럼. 엔진을 바꾸면 어떨까? 좀 더 쎈 걸로."


그렇게 되면 네세르가 '슈퍼 네세르'로 변할지 모른다.


"와우! 이거 괜찮은데."


"그래, 미라주 혈통이라고, 꼭 프랑스 제 엔진만 달라는 법 있어?""



엔진을 바꾸자!



물론 바꿔 달 때, 아무거나 달면 안 된다. 비행기는 무게 중심이 중요하기에, 엔진 중량도 비슷해야 한다. 갑자기 무거운 거나 가벼운 걸 달면 중심이 달라지니까. 그러나 두 번째 조건은 더 중요하다.


직경이 비슷해야 될 것. 직경이 크면 동체를 뜯어 고쳐야 된다. 그래야 엔진을 집어넣으니까. 이런 이유로 인해 첫번째 후보, 영국의 롤스 로이스제 스페이(spey)엔진이 탈락한다.


고장 잘 안나고, 기름도 덜 먹는걸로 정평이 나있는 정말 좋은 엔진이나,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직경이 크다는 거. 이걸 다느라고 동체 뒷부분 재설계하고, 금형 수백개를 다시 만들 순 없지 않은가?


두 번째 후보는 미국의 제네럴 일렉트릭 J79이었다. 일본에서부터 대만, 파키스탄, 그리고 유럽의 나토 가맹국 대부분이 장비한, 마하 2급 전투기 F104 스타파이터의 심장.



*이태리 공군의 스타파이터 F104S, 한 눈에도 보인다. 날개 면적도 작은게, 몹시 빠른데다 상승력 죽여줄거란 인상. 사실이 그렇다. 적기가 침입하면 로켓처럼 상승한다. 출처: wikimedia.org



바로 그 스타파이터는 한 때 '최후의 유인기(有人機)'라는 별칭을 들으며, 뛰어난 상승력을 자랑했다. 그 힘의 원천이 바로 J79엔진. 게다가 당시 미 해군과 공군의 주력기였던 F4팬텀도 이 엔진 아닌가? 그것도 쌍발로!


또 전투기 공급국이, 과거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바뀌는 때. 그래서 팬텀 도입이 막 이뤄지고 있을 때.


"그렇다면 J79 컨펌!"


서로 같은 엔진이면, 정비와 유지가 쉽고 부품도 돌려쓴다. 더구나 파워가 좋다. 8.4톤까지 낼 수 있으니까. 기존 엔진 아타6가 달랑 6톤인데 무려 8.4톤! 거의 30프로 파워 업이다. 네세르가 진화해 크피르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제네럴 일렉트릭사의 J79엔진, 걸작 엔진이다. 튼튼하고 힘이 세면서, 거친 조건에서도 불평없이 잘 돌아가니까. 물론 우리 공군의 팬텀에도, 쌍발로 장착돼 있다. 출처: gereports.com



이스라엘 슈퍼 전투기 크피르



1973년 봄, 드골 대통령의 야멸친 공급 중단 이후, 딱 6년... 프랑스가 진짜 머쓱해 질 때가 온 것이다. 크피르가 베일을 벗는 날. 4년전 최초의 도작 전투기 네세르가 날아올랐을 때, 몇 몇 프랑스 인들은 이렇게 생각 했을지 모르겠다.


"이것들 봐라. 웃기지도 않네."


"우리 미라주 3의 부품들, 엄청 갖다 붙였다며?"


그 뒤 네세르가 전투 비행대에 배속됐을 때도.


"짝퉁으로 뭘 하려고?"


그런데 이번엔 짝퉁이 아니었다. 미라주3와는 모양부터 다른데다 엔진도 달랐으니. 더구나 자기네 엔진보다, 30프로 파워 업된 양키 엔진.



*크피르가 첫 선을 보일때,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사진의 기체는 훈련용으로, 미해군이 도입한 건데, 그대로 크피르 초기형이다. 출처: wikimedia.org



활주로에 늠름하게 서있는 신형 전투기. 정말 괜찮았다. 누가 뭐래도 미라주 혈통과는 다른, 이스라엘 독자의 국산 전투기였다. 엔진을 포함, 기체 여기저기 무려 250여 군데를 고쳤고 동체가 짧아졌다. 꼬리 부분이 싹둑 잘려나간 형태. J79엔진이 프랑스 아타9보다 조금 통통한 만큼, 길이가 짧다.


여기에 또 수직 꼬리날개 아래, 기다라면서 독특한 공기 취입구. 이게 미라주와 구별되는 포인트였다. 새 엔진은 힘이 쎈 대신, 단점이 있었으니 쉽게 과열되는 점. 비행을 오래 하다보면 기체가 자칫 불덩이로 변할 판. 그렇다면 식혀줘야 한다. 바로 그 공기 취입구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 들어 이 역할을 한다. 오버 히트된 엔진을 식히는 일. 그 외에도 동체 곳곳에 비슷한 취입구가 있고, 결정적으로는 티타늄 판이 엔진과 동체 사이에 설치돼 있다. 열의 전도를 최대한 막기 위함이다.



*크피르의 특징인 수직 꼬리날개 밑, 길게 나온 과열 방지용 공기 취입구, 그 취입구 주변에도 같은 역할의 작은 구멍들이 몇개 더 보인다. 반면 아직 면적이 큰 본격적 카나드는 달려 있지 않다. 출처: aircraftresourcecenter.com



시험비행이 연이어 이루어진다. 강한 엔진이 힘 있게 밀어주기에 순발력 좋고, 상승력도 굿! 거기에 선회성능 반경도 좋아지는데, 진짜 유별나게 변한 게 있으니, 그건 폭탄 탑재량이었다. 무려 6톤!



*크피르의 폭장 데몬스트레이션. 늘어선 것들 중 가운데 좀 이상하게 생긴 건, 폭탄이 아니고 건 팟(Gun Pod)이다. 명칭이 SUU-23인데 동체 아래 다는 공중전 용 발칸포. 그런데 크피르는 이미 데파 기관포가 있어, 이 무겁고 공기 저항 심한 걸 달고 격투전에 뛰어들리가 없다. 아마 지상의 특수 목표물한테 20밀리 탄을 격렬히 흩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양 옆의 덩치 큰 물건들은 2000파운드(907kg) 폭탄이다. 아무리 힘센 전투기라 해도, 잘 달고 다니지않는 준 블록버스터 급 폭탄. 그래서 이 사진의 목표는 이거다. "까불지 마! 우린 이런 걸로 너희를 조질 수 있어." 출처: wikipedia.org



또 하나의 변화, 카나드



기체 앞의 작은 날개. 이 날개로 인해, 삼각날개의 나쁜 습성인 이착륙시의 빨라야만 하는 속도를, 좀 더 천천히 가져 갈 수 있었고(파일럿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착륙거리도 짧아진다. 그리고 일단 하늘로 올라가면, 공중전 시 선회반경이 작아지고, 특히 수직면에서의 공중전 중, 기수를 급격히 올리며 상승하는 동작, 대영각 때도 따로 엘레본의 조작이 필요없게 된다. 두상(頭上) 모멘트인가 뭔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냥 읽어 넘겨주세요;;;)



*J79엔진 버너 온! 카나드를 단 크피르가 활주로를 박차며 날아오른다. 이륙과 착륙 속도 개선, 활주거리 단축 등, 그 외 여러 공력 특성 개선에 저 작은 날개는 많은 역할을 한다. 출처: ukdjstatic-b4d.kxcdn.com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하늘에서의 활약이다. 미그기와 수호이들을 닥치는 대로 격추시키고, 지상에 대한 무자비한 타격. 그리고 그건 약속된 듯 보였다.



크피르, 날아오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활주로를 힘차게 날아올랐지만, 하늘엔 먹구름만이 드리워져 있었으니. 도대체 적기의 그림자는 어디 있는가? 대량의 먼지를 만들어내며 기어오는 적의 기갑부대는 어디로 도망갔나? 당최 보이질 않는다. 쉽게 말해 놀 데가 없고, 싸울 데가 없어졌다고 할까?



*CAP(전투 초계 비행) 중인 크피르, 골란고원 상공이라면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니. 그런데 뭔가 좀 휑한 느낌. 껀수가 없는 듯 하니... 출처: israeli-weapons.com



전투기의 본명은 하늘로 올라가 싸우는데 있다. 마냥 활주로에 세워져있거나, 격납고에서 세월 보내는 평시가 계속된다면, 전투기의 입장에서 그건 결코 전쟁 운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것.


크피스에 앞선 네세르 땐 그렇지 않았다. 시기를 잘 탄편. 놈의 시절엔 큰 전쟁, 작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소모전이라 특별히 이름 붙여진 어트리션 워(Attrition War) 말기에 태어나, 특히 제4차 중동전인 욤 키푸르 전쟁 때는 제 세상 만난 듯 날뛰지 않았나? 그 뿐이 아니다. 이놈의 독수리 새끼들, 중동을 넘어 남미까지 그 전역(戰域)을 넓힌다. 포클랜드 전쟁이다. 알젠틴이 네세르 초기 형을 대량 수입, 대거(Dagger, 단검)라는 이름으로 개명, 영국의 원정함대를 향해 발진시켰기 때문이다.



*포클랜드 전에서 알젠틴 항공공격을 받아 불타는 영국 구축함 세필드 호. 출처: iwm.org



또 여기에서 네세르는, 세상 어느 전투기도 해본적 없는 특이한 공중전에 뛰어든다. 상대는 수직 이착륙기 해리어. 인빈시빌 급 작은 항공모함으로부터 이륙한 영국함대의 수호신들. 그 사냥개(해리어는 사냥개를 뜻한다)들과 다시 또 격렬한 공중전을 전개, 네세르는 남극이 가까운 바다에서, 이 사냥개들의 피를 묻힌 독수리가 된다.



*해리어는 수직으로 뜰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엔 핸디캡이 많다. 상당한 연료가 소모되며, 무장 탑재도 그렇고, 사고 위험도 높다. 그 대신 항모에 점프 갑판을 설치, 이렇게 단거리 이륙을 하면, 많은 게 해결된다. 출처: assets.digital.cabinet-office.gov.uk



표현이 좀 조심스럽긴 하나.. 어쨌건 전쟁 복이 많던 네세르. 허나 크피르는 그렇지 않았다. 몇 년 늦게 태어나 그런지, 전쟁이라는 게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운(運) 때가 안 맞은 크피르.



사막의 하늘은 불타지 않고, 그냥 청천(晴天)이었다. 크피르 비행대는 그래서 일찍 리타이어(은퇴)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리고 얼마쯤 있다가, 전열에서 물러난다.


네게브 사막으로 들어간 크피르. 물론 기체는 언제라도 써먹을 수 있게, 틈새마다 밀봉을 하는 등 꼼꼼히 보관하지만, 어찌됐던 현역에서 밀려난 상태. 공장 문을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네세르보다 많이 생산됐는데도 네게브 사막의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받고는 서 있어야 할 신세였다.


네세르는 60여대. 크피르는 220대. 3배 이상 많은 생산 대수이며, 전투 능력도 한수내지 두수 위인데... 리타이어 될 때까지의 총 격추 대수는 달랑 1대. 네세르가 격추한 숫자 100대에 비교하면, 정말 낯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크피르가 밀려난 두 가지 이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전쟁이 사라졌기 때문. 욤 키푸르 전쟁을 마지막으로, 중동에서 국가와 국가간 대규모 전쟁이 사라진게 첫째 이유, 여러번 전쟁을 해보니, 이스라엘도 그렇고 중동 각 나라도 그렇고, 전쟁이라는게 얼마나 자원과 돈을 낭비하고, 숱한 전상자와 함께 국민생활을 피폐케 하는건지 깨닫게 됐을터. 전쟁 분위기를 극도로 고조시킬 때의 '아랍의 대의(大義)'라던가, 민족주의를 포함한 국가 내셔널리즘 같은 것들도, 알고보면 그리 중요한게 아니었을테고..



*그러나 전쟁은 나쁘기만 한 게 아니다? 무기 산업체에 있어서 전쟁만큼 좋은건 없을거다. 뒤이어 방산비리 업체들은... 출처: politicoscope.com



또 하나는 미국의 등장이다. 프랑스를 대신해 미국이 전투기 공급국으로 나선게, 두번째 이유. 그리고 또 미국은 당대 최고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나?



*이스라엘의 F4 팬텀. 날개 밑에 사이드와인더가 달려있고, 분당 6천 발의 발칸 포가 기수 아래에 숨어있다. 출처: defensemedianetwork.com



드디어 미국 전투기의 공급이 시작된다. 동시에 미국과 아랍인들 간 갈등의 역사도 시작되고... 쌍발의 중량급 장거리 전폭기 F4 팬텀이 대표적 전투기였다.


두 말하면 입이 아픈 걸작 전투기. 그 뒤로 F15 이글도 들여온다. 이글이 뭔가? 앞에 붙는 이름부터, 공중 제압이다. 공중전의 마스터. 그리고 지상 공격기도 들어온다. 그 쪽으로는 정통파 어태커, A4 스카이호크. 무척 매서운 공격기다.



크피르, 낄 데가 없다!



공중제압은 F15 이글이 하고, 지상공격은 A4 스카이호크가 한다. 또 공중제압과 대지공격을 동시에 묵직히 해나가는 F4 팬텀. 크피르에 있는 J79엔진을 팬텀은 쌍으로 달았으니, 그 캐파시티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F16 파이팅팰콘. 이것 역시 유명한 일급 전투기로, 도입을 위한 교섭이 시작된다. 이러니 크피르가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있다면 대지공격 같은 2선급 임무, 지원 전투기 비슷한 역할이다. 그쪽으로 얼마간 활동을 하는데, 어찌됐던 크피르, 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전투 비행단을 여러개 유지한다는건. 국가재정으로 큰 돈이 드는 일. 그래서 그런가? 지상공격이라면 A4 스카이호크도 매섭게 하고, 또 그 쪽이 기체도 작고 초음속 아닌 아음속이라 아무렴 유지비도 적게 드는 등, 유리한게 많아, 결국 헬 아비르(이스라엘 공군)에서 밀려난다.



**A4 스카이 호크, 미 해군의 항모 탑재용 공격기다. 작고, 다부지고 폭탄도 충분히 싣는 등 가성비 좋아, 이스라엘은 이 기종으로 대지공격을 도맡게 했다. 당연히 피격율이 가장 높았다. 출처: combataircraft.com



그래도 크피르는 매력이 있다.



이미 만들어 놓은 220대의 크피르. 상당히 많은 양이다. 그리고 사용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거의가 신품이나 다름없는 상태. 헌데 그걸 죄다 리타이어시켜?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품질로는 세계최고인 미제 전투기들이 잔뜩 있고, 시기가 또 풍운이 임박한 전쟁 직전도 아니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이스라엘은 그래서 크피르의 활로를 찾는다. 수출이다. 해외에다 파는거! 저렇게 하염없이 사막에 세워 놓다가, 부식되면 어떡하나? 외국에다 팔자! 상품 자체는 경쟁력 있지 않은가? 마하2를 넘는 고속에다, 공중기동도 좋다. 거기에 무장 탑재량은 어떤가? 무려 6톤!


그러나 최고의 세일즈 포인트는 가격이다. 자국 내 생산 코스트는 대당 4천만 달러 좀 넘는다고 알려졌으나(4천5백만이라 한다), 팔고자 하는 가격은 2천만 달러. 진짜 매력적인 가격이다. 한국 공군의 F15K '슬램 이글' 도입가가 꽤 오래 전인데도 대당 1억 달러가 훌쩍 넘었는데.


그래서 이렇게 호객행위를 할 만 했다.


"현존하는 마하 2급에서, 크피르보다 싸면 나와보라 그래! 우린 4분지 1이하 가격으로 준다!"



*후기형인 크피르 C7 모형인데, 이스라엘이 보유한 연료탱크 중 가장 큰 1700리터짜리다. 이걸 3개나 달았으니, 항속력은 엄청 날 듯. 게다가 크피르는 팬텀과 달리 엔진이 1개, 산술학적으로만 보면 연료소비가 반 밖에 안 된다. 따라서 이집트나 시리아 등, 웬만한 목표물은 거의 다 히트하고 돌아오지 않을까? 출처: imgbox.de



웬걸, 그런데 단 1대도 팔지 못 한다. 계약 대수 제로! 기존의 제4세대 전투기 3대 값이면, 크피르 1개 전투 비행대를 창설하는데, 아예 상담 조차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이었다. 미국이 못 팔게 했기 때문. 엔진이 문제였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J79엔진! 그게 크피르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냉담하게 말했다.

 

"팔려면 엔진 빼고 팔던가."




(3부에서 계속.)




[김은기의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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