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드의 설계도 탈취 작전" - 1부
"앞선 주자, 미그킬러 네세르" - 2부에 이어.
껍데기만 팔던가.
이스라엘은 기대를 컸다.
"오퍼가 많이 올 거야."
성능이 좋은데, 가격까지 싸다. 그것도 그냥 싼 게 아니라 엄청 싸다. 그럼 오퍼가 이어지지 않겠는가? 중남미와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쪽. 그 외에도 예전 미그기를 쓰던 동유럽도 포함해서. 그런데... 팔수가 없었다. 엔진을 뺀 체 수출할 순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거부한 명분은 이거였다.
"니들한테 엔진 제조 라이선스를 줬어, 그러나 팔 권리까지 준 건 아니거든."
다시 말해, '제조권만 있지, 판매권은 없다.' 이거였다.
가시밭길의 수출
허나 이스라엘은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 미국에다 로비를 하고, 읍소를 하면서 수출 허가가 내려지길 바랐다. 그러다가 첫 번째 도입국이 나타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미국이었다.
"아니, 미국이 왜?"
미국엔 전투기가 흘러넘친다. 그것도 초일류 전투기들. 따라서 다른 용도로 쓰겠다는 것. '가상 적기'다. 러시아 제 미그기 역할을 하는 가상 적기.
가상 적기 미그23
미국엔 '적기 역할을 하는 비행대'가 있다. 미그기와의 공중전을 상정해, 비행 특성이나 모양이 비슷한 걸로 구성된 반역자 비행대. 당연히 미그17과 미그21 역할의 전투기들이 있게 마련이다.
*폴란드 공군의 미그17, 미군기와 달리 작고 가벼워, 베트남 전 때의 미군에겐 익숙치 않았다. 출처: militaryfactory.com
그래서 미그17 대역으로 뽑힌게,
해군 공격기 A4스카이호크다.
속력도 사이즈도 비슷하니..
*스카이 호크, 미그 17 역할을 한다. 출처: previewcf.turbosquid.com
미그21 대역은 우리 공군에도 다수 장비된 F5E 타이거가 한다.
최고 속도에서 조금 차이가 날 뿐
비행특성과 사이즈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꼬리의 붉은 별, 기수의 01이라는 넘버가 완전 소련식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친숙한 F5E 타이거처럼 보이지 않는다. 출처: s-media-cache-ak0.pinimg.com
그런데 미그21보다 하나 위인 미그23 대역으로는 마땅한게 없었다.
마하2가 넘으면서,
스피디한 가속력에다, 저공 성능까지 좋은 기체.
*예전 리비아 공군의 미그23, 무엇보다 순간 스피드를 더해가는 가속력이 최고다. 출처: aerospaceweb.org
바다 건너에 그런 기체가 있었다. 네게브 사막에서 놀고 있는 크피르. 미국은 이스라엘과 즉각 상담, 크피르 21대를 들여온다. 물론 완전 도입이 아니고 리스로 빌리는 케이스.
*'저 놈을 격추시켜라!', 쓰리톤의 고스트 그레이(ghost grey, 유령 회색)! 저건 크피르가 아니고 소련의 미그 23이다! 출처: wikipedia.org
크피르, 서광이 보인다!
굿 뉴스가 이어서 들려온다. 애타게 기다리던 진짜 수출 상담. 에콰도르와 콜롬비아였다. 가상적 비행대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유대인들의 로비가 먹혔는지 몰라도, 어쨌든 미국이 허락을 해 준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지금 펼쳐 놓고있는 책에도, 이런 문장이 나온다.
'long delays gaining US approval'
(오랜 기다림 끝에, 미국의 허가를 얻어냈다.)
에콰도르에 12대, 콜롬비아에 11대.
결코 만족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에콰도르 공군의 크피르, 48분지 1사이즈의 모형. 출처: i1368.photobucket.com
3번째 수입국도 나타난다. 인도 아래의, 스리랑카였다. 딱 10대. 국내의 반군조직 타미르 호랑이를 공격하기 위해. 그런데 더 이상의 나라는 없었다. 단지 3개국에 대한 33대 수출.
무익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2년, 3년, 4년... 그리고 10년을 넘어 무려 20여년. 강산이 두번 변할 세월이 흘러가나, 역시 수출건은 없었다. 미국의 수출 방해도 방해지만, 4차 중동전을 끝으로, 큰 전쟁이 사라진 이유도 있고, 또 전세계 50여 개국이 넘는 회교권 국가에서 기피 전투기로 낙인 찍힌게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20세기 말에 걸프전이라는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나, 그건 크피르와 무관한 일. 구미의 일류 기체들이 판을 치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21세기로 들어선다. 크피르가 초기 비행을 한지 어언 30년. 마지막으로 수출한지는 20여 년. 그래서 네게브 사막에 방치된(?) 크피르에겐, 전혀 비전이라는게 없는 듯 보였다. 이제 젊은 사자가 아닌 것이다. 사막에서 하릴없이 늙어가는 중년의 사자.
크피르, 죽지 않았다!
그런데 항공계에 크피르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콜롬비아다. 기존에 쓰던 크피르도 개량 할 겸, 새로운 기체까지 24대의 상담 얘기. 2008년부터 새로운 타입명 크피르 C10이 도입된다. 그리고 이 콜롬비아 공군이 사고를 친다. 어찌 보면 대형 사고다.
*콜롬비아의 크피르가 미국으로 가는 중의 공중급유. 출처: aereo.jor.br
F-16 파이팅 팰콘을 무더기로 잡다.
레드 플랙(RED FLAG)이라는 미 공군 훈련이 있다. 다른 나라까지 참가해, 네바다주 너른 공역에서 벌어지는 종합 훈련. 2012년 레드 플랙은 미공군의 여러 전투기와 B-1, B-2 스텔스 전략 폭격기들, 거기에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온 F-16까지 참가한다(당시 우리 공군의 F-15K도 간 것 같다.).
그리고 뉴 페이스가 파나마 운하를 넘어 날아온다. 콜롬비아 공군의 크피르다. 이 때의 크피르는 7대.
*레드 플랙에서의 콜롬비아 크피르들. 출처: cfile214.uf.daum.net
콜롬비아는 일단 겸손한 척 했다.
"미군의 파일럿 기량은 우리 2배다."
비행시간도 더블이지만, 파일럿들이 죄다 걸프전 경험자 아닌가? 그래서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공중전에 들어가더니 표변한다. 레드 플랙 전 기간, 이 남미에서 온 신참들은 F-15 이글과 대등이상으로 싸우곤, 접근전의 도사 F-16 파이팅 팰콘만 5대를 격추시키니까...
아니 공중전의 타짜들인 이글과 파이팅 팰콘을?
크피르, 한물 간 줄로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콜롬비아 언론은 자랑스럽게 보도를 하고, 유-투브에도 레드 플랙 영상을 내보내는데, 그래서 그런가? 또 다른 도입 희망국이 나타난다. 아르헨티나다. 도입 대수는 14대.
20여 년 동안 일체의 도입국이 없다가, 두 나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크피르가 초기 비행을 한지 45년만의 일. 범위를 좀 더 크게 잡아, 미라주 3까지 집어넣으면 무려 반세기 만에 나오는 새로운 고객이고 세일즈다. 그리고 이 일들은, 다시 한 번 크피르의 성능을 증명케 한다. 시간이 흘렀어도, 전투기의 미덕인 속도에서 변함없이 빠르고, 또 움직임이 민첩하며, 기체 구조에서도 매우 견고하다는 증명.
*아! 저 샤프한 삼각날개! 프랑스에서의 초비행이 어언 60여 년이 되는데, 그래도 참신하다. 그리고 견고해 보인다. 출처: 2.bp.blogspot.com
김은기의 커피 토크
크피르 시리즈를 마치며.
3회에 걸친 시리즈를 마칩니다. 모사드와 스위스 엔지니어 이야기로 시작은 했지만, 사실 이 시리즈가 쉽지 않았습니다. 크피르가 이게 이름만 유명했지, 이야기 거리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대규모 전쟁이 자취를 감춘 것도 감춘 거지만, 정기적으로 일어나던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외에도 미국이 극도로 수출을 제한해, 크피르 사용국이 얼마되지 않고, 사용한다 해도 대수가 몇 대 안 되기 때문이죠. 그러나 크피르 전투기 자체는 상당히 매력이 있는 전투기입니다. 멋진 삼각익에다 공기 흡입구 양쪽의 카나드, 그리고 날씬하면서도 길게 빠진 기수, 아무리 기능 위주의 전투기라 해도 분명 굿 룩킹(good looking)의 전투기입니다. 게다가 능력도 있고요. 콜롬비아 쪽 크피르가 레드 플랙에서 그걸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보다 몸값이 몇배 되고, 유지비가 몇배나 드는 전투기들과의 싸움에서. 그래서 그런대로 3부까지 써왔던 것 같습니다. 3부까지 기다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은기의 전쟁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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