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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롬멜의 진짜 전쟁, 그리고 최후 - 2부

by wenaon 201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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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 다시 등장한다!



롬멜은 프랑스로 가, 우선 해안가를 두루 살핀다. 스페인 국경에서부터 시작해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연합군 상륙을 격멸할 플랜에 매달린다.



*보기 드문 컬러 사진, 멀리 해안 방벽이 보이는데, 붉은 컬러가 롬멜인듯 하다. 출처: ytimg.com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연합군을 분쇄, 다시 바다로 집어넣을 것인가? 그리고 그가 지휘하는 부대는 아프리카 군단 하고 차원이 달랐다. 그때는 1개 군단. 그런데 지금은 10개의 군단이 그의 휘하에 있다. 물론 동부전선에서 싸우는 정예 사단들과는 다르나, 어찌 됐던 10개의 군단. 그중 하나는 팔슈림 야가, 낙하산 공정 군단이다.


공정 사단이 아니라, 사단이 여러 개인 공정 군단! 롬멜의 직할부대는 아니나, 상륙전에서 같이 싸워 줄 서방 기갑집단군 산하에 2개의 기갑 군단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유명한 ‘젭 디트리히’의 무장 친위대 SS 제 1기갑 군단!


나치 독일에는 전혀 다른 2개의 군대가 있다. 서로가 계급도 다르고 군복도 다르다. 하나는 프로이센의 오랜 전통에 빛나는 베르마흐트. 독일 국방군. 당연히 이게 정규군이다.


또 하나는 나치당의 군대, SS, 무장 친위대. 대다수가 인정하듯, 독일 국방군보다 이 SS들이 강하다. 신형 무기에다, 좋은 무기는 가장 먼저 장비하고, 훈련을 하드하게 받고, 자원해서 들어온 자가 많기에 대원들의 멘탈 또한 강하고 끈질기다. 북한으로 치면 당성이 강한 집단.




*무장 친위대 SS의 병사, 이들은 독일 젊은 병사들의 공통된 캐릭터인 충성심과 용맹함과 함께 나치즘에 심취했다. 그래서 매우 강한 전투력을 발휘했으면서, 잔혹한 일들도 도맡아 했다. 출처: ytimg.com



이 무장친위대가 전쟁 시, 90만 명에 달했는데, 이 중에서 또 최고의 전투력을 꼽는다면 바로 젭 디트리히의 제1 기갑 군단이다. 그렇다면 해안가 방벽을 튼튼히 하고, 이 부대를 잘 조련한다면, 한 번 해 볼 만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지뢰만 해도 2억만 개를 매설할 계획과 함께, 저지대에는 물을 흘려보내, 공수부대가 낙하할 시, 그대로 익사시킬 계획까지 포함, 그 실행에 나선다.


그러나 그가 임의대로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지휘 영역 밖에 있는 기갑부대들. 해안가 방어진지와 지뢰, 그리고 저수지만 갖고는 적을 막을 수 없잖은가?


가장 중요한 건 적이 내륙으로 나올 시, 이를 어떻게 기갑부대로 요격, 으깨는가? 바로 그것. 기갑부대야 말로 독일의 자랑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쟁터의 ‘으뜸 패’ 아닌가? 바로 그 ‘으뜸 패’를 어디에 대기시키는가? 뒷쪽인가? 앞인가?



*제2차 대전 가장 유명한 탱크 티게르(타이거), 노르망디 전은 전쟁이 후반기로 접어들 때라, 이 외에도 쾨니히 티게르(킹 타이거)같은 초 중전차도 참가한다. 출처: dizzyfunland.com



그것은 매우 중요했다. 연합군의 상륙이 시작되면, 그때는 일각을 다투는 시기다. 그 날 하루에 모든게 달려있다. 서부 유럽 쪽 수 백, 수 천 대의 탱크들은, 득달같이 달려가 상륙군을 으깨야한다. 따라서 너무 멀리 배치돼 있으면 안 된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고로, 롬멜의 생각은 이거였다.


“해안가 가까이 배치하자!”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갑사단들을 어디에 두는가?



기갑 군단 2개를 직접 지휘하는 서방군 기갑 집단, 그러니까 서부전선 최고의 기갑 지휘관, 카일 슈엣펜부르그 기갑 대장(계급 명이 기갑 대장이다)은 롬멜과 정반대였다.


해안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후방에다 기갑전력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많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적이 상륙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그 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해, 공격해야 한다.”


롬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기갑부대를 후방에 둬선 안 돼, 해안가 바짝 붙여 둬야 한다고.”


“아니, 어째서 입니까?”


롬멜이 한 계급 높았다. 롬멜은 원수.


“상륙지점으로 이동할 때, 그때 연합군 공군이 가만 둘 것 같아?”


롬멜이 다시 말한다.


“도로상에서 우리 전차들은 궤멸된다고! 해안가로 향하는 도로가 귀관의 기갑부대 묘지가 돼!”


슈엣펜부르그가 반대한다.


“아니 해안가 가까이 둔다는데, 그럼 어떤 해안에 둔다는 겁니까? 적이 상륙할 해안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그러다 엉뚱한 데 상륙하면, 백사장 따라 이동합니까?”


롬멜이 말한다.


“그래도 해안가 가까이 두는 게 나아. 당신은 연합군 공군력을 경험하지 못 해서 그래.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고, 한꺼번에 1천 대 씩 동원할 수도 있다고. 더군다나 바다 건너 가 바로 영국이라, 그들의 폭격기, 전투기들이 항속거리에 관계없이 총출동하는 날이 그날이야.”


북 아프리카에 있을 때, 대지 공격을 받아 본 경험 때문이다. 얼마나 지겹게 달려들었나? 그 상어 아기리의 토마호크!




*롬멜의 북 아프리카 호적수들, 영국 공군의 미국제 P-40 토마호크(인디언의 던지는 도끼). 뛰어나진 않으나, 펀치력 있고 튼튼한 전투기로, 일찍부터 이집트에 주둔, 아프리카 군단을 괴롭혔다. 출처: scn.ru



허리케인 전투기는 또 기관총을 줄이는 대신, 40밀리 대구경 기관포를 달고 전차 사냥에 나섰다.



*날개 밑에 40 밀리 기관포를 단 허리케인 전투기. 이 묵직한 대전차포의 제6 전투비행대 별명은 ‘플라잉 캔 오프너(날으는 깡통 따기)’ 출처: wikipedia.org



“그래서 도로에 뭔가 이동물체가 보였다 하면, 바로 폭탄이나 포탄이 날아와. 알겠나?”


그래도 슈벳펜부르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기갑군단 2개를 지휘하는 기갑집단의 총지휘관이면서 또 대장 계급 아닌가? 그 계급에 오를 때까지 동부 전선에서 숱한 전투를 경험했다.


따라서 그가 아는 한, 하늘로부터의 그런 위협은 없었다. (상대가 초, 중기의 허약했던 소련 공군이었고, 러시아는 또 워낙 땅이 넓어, 전투기의 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스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바로 그 환경에 덕을 본 케이스 아닌가?



*융커스 87 스투카가 지금 폭탄을 내리꽂고 있다. 동체 아래 2개의 철선은, 투하 직전 폭탄을 밖으로 꺼내는 장치다. 그대로 투하하면 기체의 돌아가는 프로펠러에 폭탄이 걸릴까 봐. 출처: arizonaskiesmeteorites.com



이미 ‘영국 하늘의 전투’에서 허리케인이나 스핏트화이어의 밥이 된 게 스투카. 그러나 동부 전선은 달랐다. 전투기의 밀도가 낮아, 전투기를 만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계속해 활약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됐다.


그래도 자기는 전차들이 대량으로 투입되는 진짜 기갑 전투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슈엣펜부르그. 그가 항변한다.



*수엣펜부르그가 경험한 러시아에서의 전투는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크루스크 대전차전의 전쟁화. 출처: moddb.com



“내가 연합군 상륙 지점을 정확히 알면, 롬멜, 당신 의견에 동의하죠. 그런데 어디로 들어올 줄도 모르면서, 어느 바닷가 근처에 둔단 말입니까? A지점에 뒀는데, B나 C 지점에 상륙한다면? 따라서 후방 깊숙이 뒀다가, 상륙 지점이 확인되면 그때 신속히, 그리고 매우 유연하게 그 지점으로 기동, 밀어버리자 이겁니다.”


롬멜이 대꾸한다.


“이동이 어렵다잖아. 이동이. 여기 이 프랑스 해안으로 가는 길이 러시아의 광활한 스텝 지역하고 같은 거 같나? 거기선 아무데로나 가도 전차의 진격로가 되지만, 이곳은 좁은 길 이외엔 전부다 숲이고 관목 지대야. 따라서 적기가 내려오면 피할 데도 없이 줄 서서 당한다고!”


히틀러가 결론을 내려준다. 반쯤 절충한 결론이다. 내륙과 해안선 중간 지점에 7개 기갑사단을 배치하기로.



*쾨니히 티게르(킹 타이거) 부대. 프랑스에서의 훈련 모습 같은데, 이후 연합군 요격전에 나선다. 출처: wikimedia.org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



그리고 1944년 6월 5일. 롬멜은 잠시 시간을 내, 독일로 돌아간다. 그다음 날이 사랑하는 아내, ‘루씨’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일은 6월 6일. 그리고 운명의 날이었다. 롬멜이 대서양 방벽을 지키는 부하들에게, 단단히 말했던 바로 그 날.


“적이 상륙하면 즉시 반격한다! 그때부터 24시간이 모든 걸 결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긴 날이 될 테니까.”


아내의 생일날 아침, 롬멜은 듣지 못 했으나, 노르망디 해안의 독일군들은 귀청 찢는 소리를 듣는다. 함포의 사격과 함께, 상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노르망디의 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 해안. 특히 왼쪽에서 2번째 해안은 ‘피의 오마하’로 부른다. 미군 4사단의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군들은 손쉽게 상륙한다. 그 대신 해안가를 떠나자마자, 그때부터 하드 한 전투가 기다린다. 캉 시를 둘러싼 전투에서 정예 독일군이 출혈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출처: ytimg.com



롬멜의 얘기한 그날 롱게스트 데이. 그러나 롬멜은 거기에 없었다. 겨우 자기 부대와 통화할 수 있었던 건 오후 4시쯤.


“노르망디 해안 30킬로에 걸친 상륙입니다! 규모는 총 7개 사단! 그리고 미군과 영군의 낙하산 사단이 각각 2개!”


롬멜이 다급하게 묻는다.


“아군의 반격은?”


B군 집단 참모장 슈파이델이 대답한다.


“기갑 사단이 오길 기다리며, 반격 준비 중입니다.”


“기다리지 말고, 즉각 반격에 들어 가! 빨리!”


아마 그는 전화기를 부서져라 놓으며, 이런 한탄을 하지 않았을까?


“하필이면 내가 없을 때!”



*저기가 유럽 땅이다. 구름이 낮게 낀 노르망디 해안가. 미군이 상륙 중이다. 출처: i2.cdn.turner.com



그러나 롬멜은 당시 잠을 자고 있었던 히틀러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총통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독일군 최고 사령부는 가장 중요한 날, 여러 시간을 쓸 데 없이 잡아먹었으니까.


급거 돌아온 롬멜. 독일군 최고 사령부도 롬멜의 긴급 호소에, 전투력 좋은 교도 기갑 사단과 SS 12기갑 사단을 반격에 투입하도록 한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21 기갑 사단. 이 3개 기갑 사단이 노르망디 해안가로 이동한다. 상륙군을 요격하기 위해! 그러나 롬멜의 예상은 들어맞는다.


“연합군이 공중 공격하면 이동도 못 해!”


21 기갑 사단은 공습으로 인해, 거의 사단 전투력을 잃고 이동이 중단! SS 제 12 기갑사단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4발 중폭격기 편대에 의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딸려있던 보병부대, 노르망디 후방에 강하한 미군 낙하산 부대 6천 명의 기습을 받아 전멸해 버린다. 그뿐인가? 기갑사단들의 불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믿었던 교도기갑사단도 공중 습격을 받아, 전차 5대와 장갑차량 85만이 남게 되니까.



*“그래도 타이거다.” 출처: tanks-encyclopedia.com



롬멜은, 1천 대 이상의 연합군 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가운데, 서방군 기갑집단군 사령부를 방문, 그에게 세차게 반대했던 슈벳펜부르그 기갑 대장을 만난다.


“잔존 탱크들로 임시 전투단을 만들고, 다시 반격에 들어가라고!”


전투단의 반격이 시작되려는 찰나, 이 번엔 항아리 같은 게 하늘에서 떨어진다. 무지막지한 포탄들인데, 그것은 노르망디 앞바다에 있던 영국 전함들의 함포. 그래서 당시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해안가 100킬로 이내에서는, 중대 단위의 이동조차 곤란하다!”


그리고 그것은 기갑대장 슈벳펜브르그의 생각이 틀렸으며, 롬멜의 생각이 맞았다는 게 증명되기도 한다. 롬멜은 연합군의 가공할 공군력을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물론 롬멜이라고 해도 다 옳은 건 아니었다. 상륙 지점을 헛집은 것. 노르망디로 온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가장 가까운 ‘칼레’로 상륙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많은 수의 독일 지휘관 생각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노르망디가 영국 해안 하고는 꽤 멀었던 까닭이다.



*지도를 보면 영국의 도버와 최단거리는 칼레 해안가다. 양쪽 해안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 그런데 연합군은 비교적 먼 아래쪽을 택한다. 비행기와 함께 점선들이 여러 개 보이는 곳, 그곳이 바로 운명의 해안 노르망디다. 출처: westpoint.edu



부대 이동과 보급, 그리고 항공 지원 등에서 아무래도 최단거리의 칼레보다 불리하리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연합군은 허를 찔러버렸다.


“멀어도 방어가 허술한 노르망디로!”



히틀러와 롬멜, 최후의 만남



상륙 일로부터 3주가 지난 6월 29일. 연합군이 교두보를 확실히 하고, 내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히틀러는 두 지휘관을 부른다. 서방군 총사령관 룬드슈테트와 그 휘하 B군 집단 사령관 롬멜.


그리고 작전회의를 하는 중. 히틀러는 롬멜을 힐난한다.


“셀브르 요새를 점령한 미군에게, 왜 역습을 실시하지 않았나? 난 그것에 대해 몹시 실망하고 있소!”


롬멜은 반발한다.


“지금 우리 병사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절망적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역습을 하라고 내 몬다면 그건 다 죽으라는 겁니다.” 


*출처: 2today.com



히틀러는 소리를 버럭 지른다.


“당장 이 방에서 나가! 나가라고!”


그때가 오후 9시. 두 사람이 같은 방 안에 있었던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서로를 보지 못 하니까.


다시 일주일 조금 지난 7월 7일. 연합군이 상륙한 지 한 달째. 롬멜은 SS제 1 기갑군단의 군단장 제프 디트리히 친위대 상급 대장(터프하기로 유명한 강성 나치즘의 무장 친위대 인간이다)을 만난다.


“지금 상황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귀관은 총통과 나의 명령과 다를 때, 나를 따를 수 있겠나?”


디트리히는 확답을 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다시 다른 부대로 가는 롬멜, 전황이 수록 급해지기 때문이다.



롬멜과 스핏트화이어



프랑스의 포이 드 몽고메리 마을. 스핏트화이어 전투기 8대가 날고 있었다. 그런데 편대장인 르 브아의 눈에, 숲 속 도로를 질주하는 차 한 대가 보인다.


그는 23.5대의 격추 기록을 가진 대단한 에이스(끝 부분 0.5는 동료와 협력해서 격추). 헌데 그놈의 차, 모양이 어째 좀 다르다. 길이가 여타 자동차보다 길고, 색깔이 진한 검정.


저건 독일군 ‘스탭 카’다!

높은 지휘관이나 참모들이 타는 차!


기체의 방향을 튼다. 그 안에, 아프리카 이래로 영국의 숙적, 롬멜이 타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 하지 못 한 체. 어쨌든 독일 스탭 카는 해치워야 하니까.



*피스톤 전투기 중 가장 아름답다는 스핏트화이어, 그래서 이 기체엔 미녀와 악마가 공존한다고 한다. 롬멜을 습격한 것도 바로 이 스핏트화이어의 악마성! 출처: goactionstations.co.uk



한 때 영국의 숨통을 끊어버릴 기세였던 롬멜, 싸울 때마다 패배를 안겨, 처칠 수상으로부터, 이런 연설을 의회에서 하게 하지 않았던가?


“적이지만 대단한 지휘관입니다.”


바로 그 처칠의 스핏트화이어가 내려온다. 그리고 조종사, 르 브아는 보턴을 누른다.


“투! 투! 투!”


기체가 부르르~ 흔들리면서 날개 앞전, 20밀리 기관포가 나간다.



*롬멜의 스탭 카를 발견한 르 브아의 스핏트화이어가 불을 뿜는다! 출처: spitcrazy.com



뒷좌석의 참모들이 스핏트화이어를 발견했으나, 이미 늦은 타임! 포탄이 차를 관통하며 피를 뿌렸기 때문이다. 운전병은 어깨를 관통당하며 즉사.


“끼이이익----.”


통제력을 잃은 차, 꺾여 나간다. 그리고 도로를 이탈해 숲으로!


“콰앙!”


나무를 들이받을 때 롬멜은 앞 유리창 프레임에 머리를 부딪히며, 차 밖으로 튕겨 나간다. 그리고 두개골 함몰상으로 정신을 잃는다.



*전쟁 후 만들어진 롬멜의 전기 영화 ‘데저트 폭스(사막의 여우)에서, 스핏트화이어의 총격을 받는 나장면. 출처: impdb.com



전격전 때는 유령 사단의 사단장으로,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의 한니발 내지 사막의 여우로 불리던, 불세출의 지휘관, 그가 전쟁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즉사를 하진 않았으나, 그것은 얼마 정도의 생명 연장. 히틀러 암살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자살을 강요받고, 차 안에서 독약을 마셨기 때문.


히틀러의 얘긴 이런 거였다.


“부인과 자식은 염려 마시고.”













커피 테이블 토크



혹시 영화로 ‘사막의 여우 - 롬멜'을 본 적 있나요? 책이나 다른 매체로 롬멜을 접해도, 영화를 직접 본 경우는 드물 거라 생각됩니다.


예, 우리나라에 상영된 적 있습니다. 당시 컬러 영화가 흔했던 시절인데도, 흑백이니, 만든 건 꽤 오래전, 수입은 한참 뒤였던 거 같습니다. 찾아보니, 1951년 20세기 폭스 사 작품이라 하네요.



*영국 배우 제임스 메이슨이 주연이었던 영화, 사막의 여우. 20세기 폭스 사 작품인데 CD로 재발매된 모양이다. 출처: dvd-covers.org



지금의 종로 3가, 서울 극장, 그땐 아마 세기 극장(?)이라 했는데 거기서 상영됐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전차전이 나오는 전쟁 영화는 아닙니다. 비교적 제작비를 적게 들인, 중급 전쟁 영화? 북 아프리카 이후 롬멜의 극적인 삶에 비중을 많이 뒀던 거 같습니다.



*제임스 메이슨이 연기한 롬멜 장군. 출처: awesomebmovies.com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죠. 히틀러가 보낸 부하들과 심각하게 얘길 하고, 롬멜이 그들과 함께 집 앞에서 차에 오르죠. 뭔가 불안한 부인 ‘루씨’가 창가에서 차를 내려다봅니다.


루씨의 어깨너머, 마을길 따라 저 멀리 사라지는 차.


그녀는 아직 모릅니다. 그게 남편의 마지막 모습인 줄을. 차 안으로 화면이 바뀌고, 롬멜은 그들이 내미는 독약을 마십니다.


가족을 위해 마시는 거죠. 그리고 히틀러는 국민들한테 거짓말을 합니다.


"부상이 악화돼, 병원에서 죽음을 거뒀다고."


그러나 그를 비열하게 죽인, 히틀러의 죽음은 더 비참했습니다.


“내 시체를 쏘련 놈들이 대 놓고 구경하게 해서는 안 돼!”


그래서 권총 자살한 그와 에바를, 벙커 경비병들은 휘발유를 뿌려 태웁니다. 며칠 뒤, 소련이 벙커를 점령하고, 파헤쳐진 히틀러 시신. 그들은 베를린 시내 소련 쪽 임시 야전 병원에서, 해부를 실시하죠.


"히틀러가 틀림없나?"


"가짜 시신이 아닌가?"


형식적으로는 똑같은 자살입니다. 강요에 의해서 건 자의에 의해서 건. 그런데 죽은 뒤엔 그게 달랐습니다. 어찌됐건 롬멜의 장례는 전 국민의 진정한 애도 속에, 국장으로 치러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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